일본에서도 교과서의 우경화가 급속히 진행중이다. 다만 교과서의 집필 기준이 되는 ‘검정기준’을 바꾸는 등 간접적 방식을 활용할 뿐, 주요 정치인들이 ‘국정교과서 부활’ 등의 발언을 입에 담진 않는다.
최근 일본에서 가장 두드러진 움직임은 문부과학성이 추진하는 교과서 검정기준 변경이다. 일본 정부의 개정안을 보면, 앞으로 역사나 영토 문제를 다룰 땐 △정부의 통일된 견해를 중심으로 기술하고 △미확정된 사실을 기술할 때는 특정 견해를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으며 △통설이 아닌 수치를 제시할 땐 통설이 아님을 표기한다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일본 교과서는 앞으로 영토 문제를 다룰 땐 반드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기술해야 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은 1965년 체결된 한-일 협정에 따라 종결됐다는 견해를 언급해야 한다. 난징대학살의 희생자 수를 ‘30만명’이라고 분명히 특정하기도 어려워진다. 문부과학성은 지난달 20일 이런 안을 교과용 도서 검정조사심의회의 자문을 거쳐 확정했고, 이달 안에 시행에 나선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시모무라 하쿠분 문부과학상은 7일 새 교과목인 ‘공공’(公共) 과목을 고등학교의 필수과목으로 도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공’에서는 말 잘 듣는 사회인을 육성하려고 “납세와 규범의식 등 사회생활에 필요한 지식과 담당해야 할 역할” 등을 가르칠 예정이다. 또 1973년 이래 고등학교 선택과목이던 일본사가 필수과목이 된다.
일본 정부가 이런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자민당에 만들어진 교육재생실행본부 등이 “아직도 교과서에 자학사관이 많이 눈에 띈다”(지난해 6월 보고서)며 우경화 정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2기 내각이 발족한 뒤 보수색이 짙은 교육제도 변화가 진행중이라고 짚었다. 일본 교과서 운동의 중심 단체인 ‘아이들과 교과서 전국네트워크21’ 등도 이런 정책에 대해 사실상 ‘교과서의 국정화로 폭주하는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밝히고 있다. 일본 교과서가 국정제에서 현행 검정제로 바뀐 것은 전쟁 직후인 1949년부터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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