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시작된 일 ‘교과서 운동’
국가 통제·역사왜곡 맞서 싸워
2005년 ‘새역모’ 교과서 나오자
교사·학자·시민 지역교육위 압박
끈질긴 청원·집회로 채택 ‘차단’
국가 통제·역사왜곡 맞서 싸워
2005년 ‘새역모’ 교과서 나오자
교사·학자·시민 지역교육위 압박
끈질긴 청원·집회로 채택 ‘차단’
* 0.4% : 2005년 기준
“일본도 한국도 큰일입니다. 일본에선 아베 정권이 교과서의 검정기준 자체를 개악하려 합니다. 이제부터 아주 힘겨운 싸움이 시작될 겁니다.”
일본의 현직 고등학교 교사이자 오랫동안 교과서 운동에 참가해온 스즈키 도시오는 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일본 정부는 교과서에 역사·영토 문제를 다룰 땐 정부의 견해를 반영하고, 확정된 사실이나 학설이 없을 땐 여러 의견을 반영해 균형 잡힌 기술을 하도록 ‘교과서 검정기준’을 개정하겠다는 방침을 최근 확정했다. 일본의 교과서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시민단체인 ‘아이들과 교과서 전국네트워크21’(이하 교과서넷)은 누리집에 “검정기준이 변경되면 교과서를 기술할 때 주변국을 배려한다는 1982년 ‘근린제국조항’이 사실상 사문화되고, 역사 왜곡이 정당화된다”며 대대적인 반대 운동을 예고했다.
일본의 교과서 운동은 평화헌법 지키기나 핵발전소 반대 운동과 더불어 역사가 길고 저변이 넓은 시민사회 운동으로 꼽힌다. 2010년까지 국사 등 주요 교과서에 대한 국정제도가 유지된 한국과 달리 일본은 패전 직후인 1949년부터 검정제도가 실시돼 교과서를 통제하려는 정부와 이에 저항하는 시민사회 사이의 갈등이 일찍부터 불거졌다.
일본에서 교과서 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1962년 역사교육학자 이에나가 사부로가 검정제도를 통한 정부의 교과서 통제에 불복해 ‘이에나가 재판’을 시작하면서부터다. 32년 동안 진행된 재판은 대체로 원고의 패소로 끝났지만, 정부가 교과서를 통해 국민의 생각을 통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냈다.
이후 재판을 지원한 학자·활동가들이 1998년 교과서넷을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국의 이에나가 소송’이라 불리는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의 금성교과서 소송이 시작된 게 2009년이었으니 둘 사이엔 40여년의 시차가 있는 셈이다.
일본의 교과서 운동이 한국에서 집중 조명을 받게 된 것은 일본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이 2001년 ‘자학사관 탈피’를 외치며 후소사 교과서를 내놓으면서다. 일본 시민사회는 치열한 불채택(채택 반대) 운동으로 맞섰다. 이쿠호사(후소사의 자회사)·지유사 등 우익 교과서를 채택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지역 교육위원회가 있으면 각 지역의 교사, 역사학자, 교과서 집필자, 출판노조 관계자, 일반 시민들이 광범위한 서명운동, 반대청원, 집회 등 운동에 돌입한다. 각 지역에서 올라온 이런 정보가 교과서넷에 취합돼 일본 지역단체들과 한국의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등에 실시간 공유된다. 이런 연대 노력 덕분에 후소사 등 우익 교과서의 채택률이 2005년 0.4%, 2009년 1.7%에 그쳤다. 그러나 인구 밀집 지역인 수도권의 요코하마시가 2011년 이쿠호사 교과서를 선택해 채택률이 역사 3.8%, 공민(한국의 도덕 교과에 해당) 4.1%로 껑충 뛰어올랐다.
일본의 불채택 운동은 중학교 교과서 채택이 예정된 2015년 다시 시작된다. 그러나 아베 정권이 교과서 기술의 기준이 되는 검정기준을 이달 안에 수정할 예정이어서 각 교과서의 구체적인 기술 내용까지 분석해 대응하는 더 까다로운 운동이 필요하게 됐다. 스즈키 교사는 “한국에서도 지역마다 시민 네트워크를 꾸려 교과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시민들이 공유하는 게 중요하다”며 “교육학자, 역사학자, 현직 교사 등 광범위한 사람들과 언론 등이 힘을 합쳐 채택 권한을 가진 사람을 압박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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