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오른쪽) 등이 30일 오전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한 뒤 신사를 나오고 있다.
한국인 징용사망자 후손 ‘울분’
“한번 합사되면 모두 보이지 않는 신이 된다”
“한번 합사되면 모두 보이지 않는 신이 된다”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한국인 징용 사망자의 영혼을 합사명부에서 삭제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이희자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한국 유가족들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신념과 신앙의 문제다. 우리 식으로 영혼을 위로하고 있다.”(야스쿠니 신사 관계자)
30일 오전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 사무실. 야스쿠니 신사 관계자는 한국인 합사자 2만1181명의 합사 배제를 요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이 대표 등 6명에게 1시간 동안 종래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 대표가 2001년 처음 야스쿠니 신사를 찾을 때와 똑같은 답변이었다.
야스쿠니 쪽이 합사 배제 불가의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한번 합사되면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 된다”는 것이다. 야스쿠니 쪽의 이런 기막힌 이유에 이 대표는 당당히 따졌다. “합사 명부가 있지 않느냐. 죽은 사람을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
이 대표의 아버지 이사현씨도 야스쿠니에 합사됐다. 강제 징용 1년 뒤인 1945년 6월 중국 전선에서 사망해 1959년 한국인 징용 사망자의 집단합사 때 야스쿠니 신사에 갇혀 사후 60년이 넘도록 영혼마저도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생후 13개월 젖먹이 때 헤어져 아버지 얼굴조차 모르고 살아온 이 대표는 1997년 아버지가 야스쿠니 신사에 묻힌 사실을 알고선 “자식 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 길고 힘든 싸움을 시작했다.
2001년 일본 정부를 상대로 야스쿠니 신사 합사 취하 등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일본 고등재판소는 지난 29일 항소심 판결에서 일본 정부의 합사 책임에 대해 “합사를 결정한 것은 신사”라며 원고의 주장을 기각했다. 원고 쪽은 1958년 일본 후생노동성이 신사 쪽과 합사 문제를 협의할 당시 “눈에 띄지 않도록 합사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는 일본 정부의 내부 자료까지 제출했는데도 인정되지 않았다.
이씨는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우리는 재판에 이기고 지는 것보다 일본 사법부의 양심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이 싸움을 시작했다.”
이씨는 2001년 처음 방문했을 때는 야스쿠니 쪽의 터무니없는 설명에 곧바로 흥분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엔 상대의 주장을 끝까지 다 듣고 헤어질 땐 “또다시 대화하자”고 말할 정도로 오랜 싸움 속에 단련돼 있었다.
도쿄/글·사진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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