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징용자 등 한국인 원고단들이 29일 오후 일본 도쿄고등재판소 앞에서 항소심판결에 앞서 펼침막을 들고 항의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제이피뉴스
한국인 피해자 416명 항소심…전후 최대 보상재판
“한일협정 따라 청구대상 아냐” 1심 판결 되풀이
“한일협정 따라 청구대상 아냐” 1심 판결 되풀이
“기각한다. 재판비용은 원고 쪽이 부담한다.” 단 두 문장, 단 15초였다. 일제강점기 한국인 피해자 416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전후 최대 보상재판인 ‘재한군인·군속 재판’ 항소심 판결은 이렇게 개정하자마자 끝났다. 29일 오후 1시30분 일본 도쿄 가스미가세키 도쿄고등재판소 101호 법정에 나타난 재판장은 2심 판결문도 읽지 않은 채 곧바로 퇴장해버렸다. 방청석 여기저기에 자리한 일본인 지원자들 사이에서 “이유를 밝혀라” “무엇하는 것이냐” “부끄럼을 알아라”라며 노기 띤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민사재판의 경우 주문을 낭독하는 경우가 없다는 일본의 재판절차 관례에 따른 것이지만, 이희자씨 등 한국 원고단 6명은 재판 직후 법원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할말을 잊은 듯한 표정이었다. 재판부가 나중에 원고단에 제시한 판결문은 2006년 6월 1심판결 내용의 되풀이였다. 재판부는 강제징병 징용자, 강제연행노동자에 대한 미지급 임금 등 10개 항목에 대한 원고 쪽의 손해배상 청구와 진상규명요구에 대해 “1965년 한-일 협정에 따라 청구권은 대상이 아니다” 등을 이유로 모두 기각했다. 한국인 강제징용 사망자의 야스쿠니 신사 합사에 대한 원상회복과 손해배상 청구와 관련해선 “일본 정부는 합사과정에서 행정서비스를 제공한 것일 뿐, 정교분리를 규정한 헌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판시했다. 일본 정부가 명부를 제공해 합사가 이뤄지도록 했다는 정부 회의록 등 원고단의 증거를 무시한 것이다. 소송을 진행한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협의회의 김민철 집행위원장은 재판 직후 “역사를 직시하겠다는 하토야마 정권이 출범해 약간 기대를 했는데 일본 사법부가 시대의 변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원고단은 최고재판소에 곧바로 상고할 뜻을 밝혔다. 그러나 1990년 이후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유사한 전후배상 소송에서 몇번의 화해판결 이외에 원고가 승소한 경우는 한번도 없다. 10년 가까이 싸워온 원고단이 외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이들의 싸움은 일본 안에 메아리가 됐다. ‘주한군인군속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 등 일본의 전쟁책임을 묻는 일본인들은 2001년 6월 재판 시작부터 8년간 재판참석과 전단지 배포, 경연회 주최 등 물심양면으로 원고단과 함께 연대활동을 펼쳐왔다. 원고단의 방일 경비를 대는 것은 물론 일본 당국·관계자 접촉 주선 등까지 도맡았다. 초등학교 교사인 기무라 아야코(60)는 이날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학교에 휴가를 내고 오사카에서 상경했다. 그는 “2000년 한국에서 전쟁피해자 유가족들을 만나서 피해 실태에 대한 육성을 듣고 전후 배상을 방치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고 일본의 정의를 바로세우지 않으면 안된다고 느꼈다”면서 “전후배상 문제는 바로 우리 자신의 일”이라고 강조했다. 야노 히데키 ‘강제연행·기업책임규명 재판 전국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재판과정에서 강제연행돼 전쟁에 끌려간 사람들이 전후에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재판과정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일본인에게 전쟁과 식민통치를 바로 잡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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