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본 15만권 팔려나가
세계적 불황 시대상 반영
세계적 불황 시대상 반영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출세작인 <노르웨이의 숲>(한국제목 상실의 시대)을 읽다보면 뜻밖에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이야기를 만난다. 1968~1969년 학생운동이 절정이었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 속에서 대학 입학 뒤 운동권 서클에 들어간 여주인공 미도리가 <자본론>을 읽다가 내용이 너무 어려워 몇페이지만 읽고 그만뒀다는 부분이 나온다. “혁명정신이 없다”고 호통친 운동권 선배들도 그 책을 잃지 않고 혁명 운운한 것을 알고 서클을 그만뒀다는 내용이다.
40년이 지난 일본에서 그 어렵다는 <자본론> 다시 읽기 붐이 일고 있다. 지난해 가을 이후 금융위기와 뒤이은 세계동시 불황이 지속되면서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점을 이론적, 역사적으로 분석한 <자본론>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원전의 난해함을 풀어헤친 해설서 10여권이 한꺼번에 출판돼 <자본론> 입문의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다.
그 선두 주자가 <자본론 만화로 독파>(이스트 프레스)이다. 아버지와 치즈 만들기에 힘을 쏟는 청년이 투자가의 권유로 사업을 확대하는 내용을 골격으로 자본가에게 착취당하는 노동자의 모습이 만화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1권, 2권 합해서 15만권이나 팔렸다. 한국과 중국 등에도 번역출판될 예정이다.
출판사쪽은 세계적인 불황 속에서 독일에서도 <자본론>이 다시 읽히는 것을 알고 기획했다고 한다. 출판사쪽은 28일 마르크스가 엥겔스와 함께 초안을 작성한 공산주의자동맹 강령인 <공산당선언>도 만화로 출판할 예정이다.
원전을 쉽게 요약한 <초역 자본론>은 판매실적 10만권을 넘었다. 이밖에도 <이론극화 마르크스 자본론> <지식제로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입문> <고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자본론> <초심자를 위한 마르크스> 등 원전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안내한 책도 나왔다.
<자본론> 다시 읽기 붐은 지난해 50만권 이상 팔린 1929년 프롤레타리아 소설 <게공선>(고바야시 다키지) 붐과 맞닿아 있다.
일본 자본주의 초기 가혹한 노동조건과 노동자의 투쟁을 다룬 이 소설은 오늘날 ‘워킹푸어’ 상태에 놓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숨막힌 상황과 겹쳐지면서 80년 세월을 뛰어넘는 생명성을 얻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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