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마스크맨?
연간 소비량 20억장
‘주위배려’ 특성 반영
‘주위배려’ 특성 반영
신종 인플루엔자가 도쿄에 상륙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21일 아침, 일본에 근무하는 한국기업 주재원 부인 김하영(49)씨는 마스크 물결로 넘치는 텔레비전을 보고 불안한 마음에 ‘일본식 방역 태세’ 구축에 나섰다. 동네 슈퍼마켓과 약국 5~6군데를 돌아다녔으나 헛수고였다. 모두 품절이었다. 며칠 뒤 지인을 통해 겨우 마스크 한개를 입수했다. 그러나 그는 “구해놓고도 갑갑해서 그런지 잘 착용하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신종 플루 감염자가 대량 발생한 고베, 오사카 등 간사이 지방은 물론 도쿄 시내 어느 곳에서든 요즈음 흰색 마스크가 넘쳐난다. 미국과 유럽, 한국 등에서도 신종 플루 감염이 빈발하고 있지만, 이런 현상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마스크로는 건강한 사람의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게 공중보건 전문가들의 상식이다. 하지만 일본인의 ‘마스크 신앙’은 그만큼 유별난 데가 있다.
일본위생재료공업연합회(일위생)의 통계를 보면 일본의 연간 마스크 소비량은 무려 20억장이다. 3월말 현재 약 1억개가 남아 있던 마스크 재고도 바닥을 드러냈다. 일부 마스크 업체는 황금연휴도 반납한 채 24시간 공장을 풀가동하며 특수를 누리고 있다.
일본에선 1910년대에 분진 방지 공업용 마스크가 처음 등장했다. 1919년 스페인 감기 대유행은 마스크붐에 불을 댕겼다. 당시 정부는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죽는다”는 살벌한 계몽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마스크 가격은 당시 돈 3000엔의 거금이어서 서민들은 엄두를 못냈다고 한다. 1990년대 들어서는 1회용 마스크도 보편화됐다. 최근 꽃가루 알레르기, 조류인플렌자,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의 대유행도 ‘마스크 착용의 생활화’를 정착시켰다.
“청결한 것을 좋아하고” “주위를 배려하는” 일본인의 특성도 마스크 신앙을 설명하는 데 빠지지 않는다. 1970년대 한 미국 생명보험업체가 일본 시장에 진출한 것도 일본인의 유별난 마스크 사랑이 계기가 됐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조사차 일본에 온 이 생명보험업체 사장은 많은 일본인들이 마스크 차림인 데 놀라 “이만큼 예방의식이 높은 나라라면 보험도 팔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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