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달러=90엔대)
달러·유로 불안한 투자자들 “엔으로”
전 세계 자산가격 폭락 가속화 우려
달러·유로 불안한 투자자들 “엔으로”
전 세계 자산가격 폭락 가속화 우려
일본 엔화 강세가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최근 엔화의 급속한 상승은 전세계에 흩어졌던 엔화 자금의 급속한 일본 회귀가 기본 배경이다. 세계 자산 시장을 움직이는 큰손 노릇을 해온 엔화 자금의 회귀현상은 자산가격의 폭락을 불러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24일(현지시각) 런던 외환시장에서는 1달러에 대한 엔화 가치가 7엔이나 상승해 13년2개월 만에 1달러=90엔대에 진입했다. 또한 유로화에 대해서도 14엔이나 올라 10년 만에 1유로=113엔대를 기록했다. 원화에 대해 엔화는 24일 100엔의 매매 기준율은 1526.23원으로 1520원대를 돌파했다. 원화 강세가 절정이던 지난해 5~6월에 비해 원화에 대한 엔화의 가치는 1년4~5개월 새 두 배쯤 상승했다. 복수의 통화에 대한 엔화의 종합적 가치를 나타내는 실질환율(닛케이 통화인덱스, 2005년=100)은 24일 현재 113으로 월초에 비해 13% 상승했다. 8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최근 엔화 강세 배경은 달러화 약세의 영향이 컸던 과거 엔 강세와는 다르다. 전세계를 휩쓰는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일본 은행들의 손실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엔이 안전한 통화로서 매입되고 있다”는 게 국제금융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5일 “엔이 어느새인가 세계 최강의 통화가 되고 말았다”고 진단했다. 투기자금이 일제히 유출돼 그 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전한 엔으로 피난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엔캐리 거래의 해소 현상도 엔화 강세를 부추긴다. 미국과 유럽 등 헤지펀드와 투자은행들이 일본의 초저금리 자금을 빌려 수익이 높은 외국의 통화 및 고금리 상품에 투자하는 엔캐리 거래를 해소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하고 있다. 이들은 금융위기로 엔화 강세 현상이 계속될 것으로 보이자, 자금 변제를 위해 엔화를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다. 일본의 개인투자가와 기관투자가들도 외화예금이나 투자신탁, 외국주식 등의 손을 떼고 엔화를 현금으로 확보하고 있다.
엔화 자금은 사실상 제로금리에 가까웠던 지난 2002년 이후 엔캐리 거래 등으로 해외로 나가 전세계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우는 데 일정한 몫을 했다. 그런 엔화 자금의 이탈은 전세계 자산가격의 폭락을 더욱 부채질하는 구실을 할 것이란 지적이 높다. 한국에서도 일부 투자자들이 엔화 자금을 빌려 자산투자를 했다가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는 사례들이 보고되는 실정이다.
엔화 상승은 일본 수출산업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1달러에 1엔의 엔 강세가 진행되면 도요타 자동차의 경우 400억엔의 영업이익이 날아간다. 유로에 대해서는 1엔의 엔고는 60억엔의 손실이다. 연간 대일 무역역조가 300억달러가 넘어서는 한국으로서는 급격한 엔화 상승으로 기업 적자폭이 크게 늘 것으로 보인다.
2004년 3월 이후 환율 개입을 중단한 일본 재무성도 예상을 넘는 엔강세 현상에 “심상찮은 움직임”이라며 엔을 풀 움직임도 검토하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현재와 같은 엔강세는 금융위기가 잠잠해지기 전까지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개입이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엔강세 현상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와 95년 미국의 대일 적자 급증 때 등 과거 두 차례 진행된 적이 있다. 두 차례 모두 미국이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주요 국가의 협조를 얻어 인위적인 달러 약세화에 개입한 것으로, 플라자 합의 당시 1달러=240엔이었던 엔 시세가 1년 뒤 1달러=150엔으로 급등했다. 1995년엔 단기간에 1달러=79.75엔까지 급등해 일본 기업이 큰 타격을 입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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