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준이치로(66·) 전 일본 총리가 사실상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25일 오후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선거구 후원회 모임에서 “의원 생활 36년을 되돌아보면 더 이상 해야 할 일은 없다. 지금 일종의 달성감을 느끼고 있다. 정치활동은 계속하겠으나 차기 총선에는 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혔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지역구는 둘째 아들인 고이즈미 신지로에게 물려줄 뜻을 밝혔다.
고이즈미의 정계은퇴 선언은 자신의 구조개혁 노선이 일본 정계에서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의 지지를 얻어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선 고이케 유리코 전 방위상은 경기진작 대책 등 반고이즈미 노선을 주창한 아소 다로 간사장에게 큰 차이로 패배했다. 고이즈미의 정계 은퇴로 총선 이후 정계개편 구도에 큰 변화가 불가피하게 됐다. 나카가와 히데나오 전 자민당 간사장 등 고이즈미 추종 세력들은 차기 총선 이후 정계 개편의 촉매제 구실을 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돼 왔다.
고이즈미는 총리 재임 기간 중 세출 억제와 시장원리를 중시하는 구조개혁을 단행해 거품경기 붕괴 이후 바닥을 헤매던 일본 경제의 소생 기틀을 마련했으나 각종 규제를 완화하며 대규모 비정규직 양산에 따른 소득 격차와 지역 격차가 심화되는 부작용도 낳았다.
또한 2006년 9월 물러날 때까지 5년5개월 동안 ‘장수’ 총리(기간으로 역대 3위)였던 그는 높은 지지율을 얻었으나 재임 내내 해마다 한 차례씩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하는 등 아시아 경시 정책을 펴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주변국과 끊임없는 마찰을 빚었다. 그러나 2002년 9월 전격적으로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일본인 납치 문제와 북핵, 국교정상화를 동시 추진하는 ‘평양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