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45·사진)
홍초원재팬 김영수 사장 8번째 점포 열어
임대 어렵던 악조건 넘어 “2년뒤 100호점”
임대 어렵던 악조건 넘어 “2년뒤 100호점”
매운 맛에 약한 일본인들의 혀끝을 매운 맛으로 파고든 한국 외식업체가 있다. 톡 쏘는 듯한 매운 ‘불닭’을 주메뉴로 국내에서 인기를 끈 홍초원은 2005년 4월 도쿄 번화가 시부야에 직영 1호점을 개점한 뒤 현재까지 8곳의 점포를 내며, 일본에 뿌리내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규모 1억8천만엔을 기록한 현지법인 홍초원재팬은 지난 16일 일본의 음식유통업체인 ‘윌리’와 업무제휴 조인식을 갖고 제2의 도약을 다짐하고 있다. 프랜차이즈 계약 등 점포운영 사업을 현지업체인 윌리에 위탁해 2010년까지 일본 내 100개 점포를 개점한다는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홍초원재팬의 일본 입성에는 김영수(45·사진)씨의 굴곡 많은 삶이 배어 있다. 도쿄 로고쿠점에서 만난 그는 “불닭이라는 음식 자체의 인지도가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에 우선 무슨 음식인지를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고, 좋은 가게 자리가 있어도 일본인 건물주들이 한국인이라고 임대를 주지 않는 악조건 속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한국 불닭의 매운 맛은 조금 순화했지만 맛의 본질은 그대로 유지한 채 ‘한국 창작요리점 부르다쿠’라는 브랜드로 정면 승부했다. 여기에다 매운 맛과 고소한 맛을 버무린 돼지구이 ‘부루돼지’ 등 일본 현지에 맞게 메뉴를 추가해 일본인들의 혀끝을 자극했다. 한류 붐도 한몫했다. 한국 식당이 밀집한 도쿄 신오쿠보보다 30~40% 싸게 값을 매겨 주머니가 가벼운 일본 젊은이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종업원 이동이 잦은 외식업계에서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홍초원의 강점이다. 강남수(34)씨 등 홍초원재팬의 주요 간부 세명은 김 사장이 홍초원에 앞서 10년 전 부산에서 생맥줏집을 할 때 ‘알바’로 일하던 사람들이다.
김 사장은 아직 집이 없다. 1997년 12월 사업을 하던 아버지가 사기를 당하면서 50억원 가까이 빚을 진 채 부도가 나고, 한 달 뒤 집안의 기둥인 큰형마저 간암 판정을 받는 불행이 한꺼번에 밀어닥쳤다. 부모님과 1년 뒤 사망한 형님의 식구, 자신의 처자식 등 세 가정의 생계를 한꺼번에 책임져야 했다.
대학 동기한테 아무런 조건 없이 1억원을 받아 고향 부산에서 음식 장사를 하던 그는 2002년 일본 유학 동창생으로 홍초불닭집을 하고 있던 홍성표(38)씨에게서 도와 달라는 제의를 받고 홍초불닭 체인사업에 본격 뛰어들었다. 그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했던 경험이 사업에 적지 않은 밑천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84년 서울대 서양사학과에 입학해 학생회 사회부장으로 시위를 주동하고 87년 때는 명동성당 시위지도부의 한 명으로 활동하는 등 ‘피가 뜨거운 청년’이었다.
“대학 시절 깨우쳤던 공동체 의식이 외식산업 경영과 관통하는 것 같다. 또 부분보다 전체를 파악하려는 사고의 습관이 도움이 됐다. 전체를 바꾸고자 지금 당장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고민하는 경험이 없었다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싶다.”
도쿄/글·사진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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