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김도형 특파원
특파원리포트
8년새 폭행범 30~50대 5배·60대 10배 급증
‘버블 붕괴’ 뒤 생활 ‘빡빡’ 분노 억제 못해 일본인은 대체로 질서정연하다. 공공장소에서 정해진 규율에 잘 따르는 편이다. 요즘 10대 일본 청소년들이 과거에 비해 공공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다는 한탄의 목소리가 일본 안에서 나오긴 하지만 30대 이상은 여전히 예의바른 편이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도 한쪽 편으로 줄을 선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공공장소에서 불만과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그대로 표출해 주변을 소란스럽게 하는 성인들이 늘고 있다. 갑자기 화를 낸다는 의미의 ‘기레루’라는 신조어가 최근 사전에 등재된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아사히신문>은 애초 10대 청소년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던 기레루 현상이 30대 이상 성인들에게 확산되고 있는 데 주목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는 특집 기사를 최근 두차례 내보냈다. 지난해말 일본 민영철도 게이큐선의 어느 역에서 싸움을 말리던 역장(56)은 봉변을 당했다. 중년 남성 두명이 말싸움하는 것을 발견하곤 “사무실에 가서 얘기하자”며 중재를 하자, 갑자기 한쪽 40대 남성이 “죽이겠다. 흠씬 때려주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역장이 근처에 있던 역무원에게 경찰에 신고하도록 지시하자 이 남성은 오른쪽 주먹을 역장의 얼굴에 날렸다. 이후 게이큐는 승객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매뉴얼을 작성했다. 또 전체 역무원 700명에게 방범 벨을 소지하게 하고, 일부 역에는 경비원을 배치했다. 도쿄의 한 백화점에 근무하는 여성 점원(44)은 지난해 연말 세밑상품 판매대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 중년부부가 물건을 사러왔다. 남성이 물건을 고르는 사이 여성은 그대로 서 있길래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권했는데 거부당했다. 재차 권하자 그 여성은 온화한 표정을 싹 바꿔 ‘괜찮다고 이야기 했잖아요’라고 호통을 쳤다.” 이 점원은 “고객과의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통계로도 일본 성인들의 기레루 현상은 잘 드러난다. ‘폭력범행 연령별 검거인수 추이’라는 경찰청 통계를 보면, 1998~2006년 10대에선 거의 변화가 없는 데 비해 60살 이상에선 약 10배, 30대와 50대에선 각각 5배로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본 민영철도협회 조사를 보면, 제이알(JR) 등 21개 철도사업자 직원들에게 폭행을 한 사람의 80% 이상을 30대 이상의 성인이 차지했다. 2004년 오카야마현의 한 종합병원 간호사 4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약 10%가 환자로부터 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왜 공공장소에서 분노와 불만을 통제하지 못하는 일본인들이 늘어나는가? 우선 일본 사회 전반적으로 여유가 없어졌다는 점이 가장 큰 배경이란 분석이 많다.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직장인들은 평생직장 개념 붕괴와 성과급 도입 등으로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게 됐다는 것이다. 숨막힐 정도로 빡빡한 직장·사회 생활에서 쌓일 대로 쌓인 불만을 갑자기 폭발시킨다는 분석이다. 특히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구조개혁 이후 개인간 소득격차와 디지털격차가 확대되면서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의 고립감 심화가 이런 현상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게이큐선 역장에게 주먹을 날린 남성은 며칠 뒤 사과편지를 보냈다. 건설 노동을 하면서 혼자 살고 있다는 이 남성은 “예전에는 일자리가 더 많았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마음이 흐트러졌다”고 말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버블 붕괴’ 뒤 생활 ‘빡빡’ 분노 억제 못해 일본인은 대체로 질서정연하다. 공공장소에서 정해진 규율에 잘 따르는 편이다. 요즘 10대 일본 청소년들이 과거에 비해 공공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다는 한탄의 목소리가 일본 안에서 나오긴 하지만 30대 이상은 여전히 예의바른 편이다.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도 한쪽 편으로 줄을 선 장면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들어 공공장소에서 불만과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그대로 표출해 주변을 소란스럽게 하는 성인들이 늘고 있다. 갑자기 화를 낸다는 의미의 ‘기레루’라는 신조어가 최근 사전에 등재된 것도 이런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아사히신문>은 애초 10대 청소년들의 전유물처럼 인식되던 기레루 현상이 30대 이상 성인들에게 확산되고 있는 데 주목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는 특집 기사를 최근 두차례 내보냈다. 지난해말 일본 민영철도 게이큐선의 어느 역에서 싸움을 말리던 역장(56)은 봉변을 당했다. 중년 남성 두명이 말싸움하는 것을 발견하곤 “사무실에 가서 얘기하자”며 중재를 하자, 갑자기 한쪽 40대 남성이 “죽이겠다. 흠씬 때려주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역장이 근처에 있던 역무원에게 경찰에 신고하도록 지시하자 이 남성은 오른쪽 주먹을 역장의 얼굴에 날렸다. 이후 게이큐는 승객과의 충돌을 막기 위해 매뉴얼을 작성했다. 또 전체 역무원 700명에게 방범 벨을 소지하게 하고, 일부 역에는 경비원을 배치했다. 도쿄의 한 백화점에 근무하는 여성 점원(44)은 지난해 연말 세밑상품 판매대에서 황당한 경험을 했다. “한 중년부부가 물건을 사러왔다. 남성이 물건을 고르는 사이 여성은 그대로 서 있길래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권했는데 거부당했다. 재차 권하자 그 여성은 온화한 표정을 싹 바꿔 ‘괜찮다고 이야기 했잖아요’라고 호통을 쳤다.” 이 점원은 “고객과의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통계로도 일본 성인들의 기레루 현상은 잘 드러난다. ‘폭력범행 연령별 검거인수 추이’라는 경찰청 통계를 보면, 1998~2006년 10대에선 거의 변화가 없는 데 비해 60살 이상에선 약 10배, 30대와 50대에선 각각 5배로 대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본 민영철도협회 조사를 보면, 제이알(JR) 등 21개 철도사업자 직원들에게 폭행을 한 사람의 80% 이상을 30대 이상의 성인이 차지했다. 2004년 오카야마현의 한 종합병원 간호사 4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선 약 10%가 환자로부터 폭력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왜 공공장소에서 분노와 불만을 통제하지 못하는 일본인들이 늘어나는가? 우선 일본 사회 전반적으로 여유가 없어졌다는 점이 가장 큰 배경이란 분석이 많다.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직장인들은 평생직장 개념 붕괴와 성과급 도입 등으로 직장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게 됐다는 것이다. 숨막힐 정도로 빡빡한 직장·사회 생활에서 쌓일 대로 쌓인 불만을 갑자기 폭발시킨다는 분석이다. 특히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구조개혁 이후 개인간 소득격차와 디지털격차가 확대되면서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들의 고립감 심화가 이런 현상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게이큐선 역장에게 주먹을 날린 남성은 며칠 뒤 사과편지를 보냈다. 건설 노동을 하면서 혼자 살고 있다는 이 남성은 “예전에는 일자리가 더 많았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마음이 흐트러졌다”고 말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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