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살 타계한 전 일본공산당 의장 마야모토 겐지 / 사진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 제공
‘신념의 정치인’ 좌도 우도 추모 열기
“총리시절 질문을 받고나서는, 적이지만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는 17일 98살을 일기로 숨진 미야모토 겐지 전 일본공산당 의장에 대해 “우리들과 사고방식, 정책은 다르지만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신념을 지킨 당당한 모습을 보고 경의를 표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의례적 수준을 넘는 진심이 묻어난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민주당, 공명당, 사민당 등 각 당 대표들로부터도 고인의 명복을 비는 추모사가 잇따랐다. 진보성향의 <아사히신문>부터 극우성향의 <산케이신문>에 이르기까지 일본 언론은 일제히 일본공산당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미야모토 전 의장의 발자취를 1면을 비롯한 3~4개면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미야모토는 강인한 정신력과 현실에 맞춘 유연한 노선을 겸비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는다. 도쿄제국대 재학 중인 20살 때 쓴 논문으로 잡지사의 헌상논문에 1등으로 당선될 정도로 천재 소리를 듣던 그는 1931년 대학졸업 뒤 일본공산당에 입당했다. 1933년 공산당 프락치 치사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형을 받고 투옥된 뒤 “경찰의 집요한 고문과 전향공작에도 굴하지 않고”(<일본공산당 70년사> 중) 12년간 버티다 종전을 맞아 풀려났다. 1958년 일본 공산당 제7차대회에서 서기장으로 취임한 이후 1997년 9월 은퇴할 때까지 위원장, 의장 등 직책을 맡으며 40여년간 실권을 쥐고 일본공산당의 확대와 생존을 도모했다.
1960년대 옛 소련과 중국 공산당과 거리를 둔 ‘자주·독자노선’을 걸었으며, 1987년 대한항공 폭파사건 때는 “북한이 한 것”이라고 발언했다. 1991년 옛 소련공산당의 해체 때에는 “대국주의·패권주의라는 역사적 거악을 저지른 당의 종언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가 물러난 뒤 일본공산당은 2000년 당규약에서 ‘전위정당’ ‘사회주의혁명’ 등 문구를 삭제하고, 2004년에는 강령을 개정해 상징천왕제나 자위대의 존속을 인정했다.
그가 남긴 부정적인 유산도 지적됐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폐쇄성의 상징으로 알려진 민주집중제(소수는 다수의 결정에 따르는)는 규약에 그대로 남아있다. 2대째의 리더 시대에도 여전히 ‘부정적 유산’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사진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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