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문, ‘황국영웅’ 조작 보도에 반성
“중일전쟁 때 ‘육탄3용사’는 조작”
기자들이 ‘소설’ 작성…군부는 대대적 선전
기자들이 ‘소설’ 작성…군부는 대대적 선전
“폭탄을 몸에 두르고 (적의) 철조망에 뛰어들어 터뜨림으로써 자신과 함께 그것을 분쇄해, 장렬하게 폭사하고 보병의 돌격로를 연 3명의 용사가 있다.”
만주사변이 발생한 이듬해인 1932년 2월24일치 일본 <아사히신문>은 중국 상하이 특파원발로 ‘육탄 3용사’ 기사를 내보냈다. 같은날 경쟁지인 <마이니치신문>도 비슷한 내용의 특파원 기사를 보도했다.
육군성은 이 보도가 나온 직후 즉각 ‘3용사’에 훈장 수여를 결정했다. 이어 교과서에 이 내용을 게재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두 신문 보도를 이용한 대대적인 선전전에 나섰다. 아사히는 2월26일 상보를 실은 데 이어 27일 ‘민족정신의 극치’라는 내용의 사설을 싣고, 세명의 죽음을 ‘야마토 정신’(일본의 고유한 정신)의 특질이라고 찬양했다. 아사히는 ‘3용사의 영웅담’을 담은 소책자를 만들어 전국 초등학교에 무료로 배포했다. 또 아사히와 마이니치는 현상금까지 내걸고 추모곡 공모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아사히는 13일 75년 전의 이 보도가 엉터리라고 털어놓고, 1개면을 털어 반성하는 내용의 기사들을 실었다. 신문은 중국 침략 전쟁의 초기 단계에서 벌어진 자사의 영웅만들기에 대해 ‘신문이 꾸며낸 영웅’ ‘특종경쟁, 미담만들기’로 규정했다. ‘3용사’의 실체는 현장에 가지도 않은 당시 특파원들이 전선에서 돌아온 장교의 얘기만 듣고 꾸며낸 미담이었다고 설명했다. 신문은 “이렇게 만들어진 자기희생의 미화는 나중에 특공대의 바탕이 됐다”고 자성했다.
“3용사로 알려진 사람은 애초 폭탄의 도화선에 불을 붙여 철조망에 내던지고 재빨리 돌아올 예정이었다. 그러나 도중 한명이 쓰러져 시간이 지체되는 바람에 그냥 돌아왔다. 그러자 상관은 ‘천황과 국가를 위해 가라’며 노발대발했다. 되돌아간 세명이 철조망에 도착했을 즈음 폭탄이 터졌다.” 국립문서관에 보관된 당시 내무성 문서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아사히는 지난 4월30일부터 일본 침략전쟁의 실태를 조명하고 일제에 동조해 무비판적으로, 때론 앞장서 왜곡을 일삼은 자사의 보도 태도를 반성하는 장기 연재물‘신문과 전쟁’을 내보내고 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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