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로봇시대, 일본에서 현실로
복지분야에서 실용화 두드러져
복지분야에서 실용화 두드러져
“비켜주세요.” “부딪쳐 아픕니다.” “3㎏ 이내의 물건이 있으면 제게 걸어주세요.”
일본 후쿠시마현 아이즈와카마쓰시 아이즈중앙병원에선 병원안내 ‘직원’인 로봇이 분주하게 돌아다닌다. 이 로봇은 누가 앞을 지나가거나 접촉하면 센서가 곧바로 작동해 동작을 중단하고, 음성 메시지를 내보낸다. 몇 십 가지 문장을 구사하면서 이용자를 안내한다.
이 병원은 한 벤처기업과 공동으로 로봇을 개발해, 10월 병원안내용 2대, 접수업무용 1대를 들여왔다. 전체 비용은 약 6천만엔(4800만원). “특별주문 부분이 있어 다소 비싼 느낌이 들지만, ‘병에 걸려야만 병원에 온다’는 기존 관념에 변화를 주려고 도입했다”는 게 병원 쪽의 설명이다. 실제 로봇을 만나기 위해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기후현 가카미가하라시도 2월 접수업무 로봇을 도입했다. 질문을 하면 음성과 동작으로 담당과의 위치를 알려준다. 후쿠오카 시가지에선 길안내 로봇이 돌아다니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에선 산업현장에서나 볼 수 있던 로봇들이 이미 실생활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특히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복지 분야의 로봇 실용화가 두드러진다. 나라현의 한 노인홈에선 지난달 말부터 휠체어형 로봇이 맹도견을 대신해 시각장애 노인들의 눈 구실을 한다. 목적지와 경로를 설정한 뒤 조작단추을 누르면 카메라와 광센서가 점자블록 등을 따라가며 사람을 안내한다. 목적지까지 안내하는 네비게이션 기능도 갖추고 있다. 물론 장애물이 앞에 나타나면 자동으로 정지한다. 휠체어로 사용할 수도 있는 이 로봇의 가격은 200만엔. 시각장애인들의 행동반경을 크게 넓혀주고 있다.
이화학연구소가 개발 중인 수발 로봇 ‘리만’은, 시사주간 <타임>이 올해 세계를 대표하는 우수 발명품으로 선정했다. 노인·장애인 수발에서 가장 힘든 동작 가운데 하나가 안아서 침대나 욕실로 옮기는 동작이다. 시·청·후·촉각을 갖춘데다 부드러운 플라스틱 소재로 몸체를 싼 이 로봇은 지시에 따라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편안하게 안아서 이동한다. 5년 뒤면 고령자 시설에 본격적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대소변 받아내기 등의 기능도 첨가될 전망이다. 독거노인의 말상대가 될 로봇들도 개발 중이다. 로봇 관련 210개 업체와 대학, 지자체 등은 13일 ‘로봇 비즈니스 추진협의회’ 창립대회를 열었다. 복지 분야 등으로 로봇 활용도를 넓혀나가는 과정에서 생겨날 문제점을 함께 해결하겠다는 게 그 취지다.
사이타마현 가와고에시 임상검사위탁업체 비엠엘 종합연구소에선 심야가 되면 운반로봇 10대가 무선으로 검사시료 도착을 파악하면 비어 있는 분석장치로 부지런히 나른다. 이 연구소는 전국에서 매일 10만건 이상의 혈액 등 검사시료를 모아 밤 사이에 검사를 끝낸 뒤 다음날 아침 의사들에게 결과를 보낸다. 로봇의 도움이 절대 필요하다. 로봇팀이 작동하면 시간당 9천건의 시료 운반이 가능하다. 효율은 종래의 2배다. 이 연구소는 그동안 컨베이어벨트 활용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으나 결과가 신통치 않자 로봇으로 눈을 돌렸다. 실내공간이 넓지 않지만 팀 체제를 이룬 로봇들은 8m 앞까지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레이더와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충돌사고는 발생하지 않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그동안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그려지던 로봇 시대가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며 기술은 발달하고 가격은 떨어질 게 확실해 로봇의 실용화에 한층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했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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