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일본 오키나와현 기노완시 해변공원에서 열린 ‘평화와 생활을 지키는 현민대회’에 참가한 헤노코 지역 주민들이 ‘연안안 반대’라고 쓴 팻말을 꺼내놓고 앉아 있다.
헤노코 주민들 끈질긴 투쟁 정부 강제진압 전혀 없어
주민들도 철저히 비폭력 기지찬성 여론도 반대로
주민들도 철저히 비폭력 기지찬성 여론도 반대로
미국의 해외주둔군 재배치 전략이 현지 주민과 갈등을 빚은 사례라는 점에서 일본 오키나와현 나고시 헤노코 지역은 우리의 평택 대추리와 쌍둥이다. 지난 1996년부터 이곳 주민들은 산호초가 아름다운 바다 위에 새 미군기지를 건설하려는 계획에 맞서 싸우고 있다.
우리와 다른 것은 일본 정부와 미군이 잇따라 타협안을 내놓는 등 주민들의 끈질긴 투쟁이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주민들은 오는 11월 실시될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가 이번 투쟁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까지 1년여동안 이어진 바다 위 초소 점거 농성은 이번 투쟁의 꽃으로 기억된다. 미군은 1996년 기노완시 후텐마 기지 한복판에 있는 비행장을 이곳 헤노코 앞바다 위로 옮기는 이른바 ‘해상기지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바다 위에 무려 1800m에 이르는 활주로와 기지를 지으면 생태계가 파괴된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일본 정부는 2004년 9월께 공사 시작을 위한 해상 초소 4곳을 만들었고, 이어 강력한 반대 투쟁이 시작됐다.
주민과 활동가 10~15명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초소를 점거했다. 이들의 눈물 겨운 투쟁은 하루도 빠짐없이 이어졌다. 결국 미군은 지난해 10월 ‘해상기지안’을 포기하고 뭍과 연결되는 곳에 기지를 세우는 ‘연안안’을 발표하며 한 발 물러섰다. 주부이자 건축가로, 투쟁에 동참했던 하야시 기요코는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어려웠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경찰이 주민을 강제로 들어내거나 체포·구속하는 일은 단 1건도 없었다. 군도 군사시설보호구역 지정 등의 편법을 쓰지 않았다. 주민들도 철저한 비폭력 저항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심지어 미군들 앞에서는 손을 머리 이상으로 들지도 않는다. 위협적인 행동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계속된 반대 앞에 미군은 활주로를 V자형으로 만드는 수정안을 다시 내놨다. 하지만 주민들은 “미국 본토에나 지으라”고 요구한다. 지역 최대 일간지 〈류큐신보〉의 마쓰모토 쓰요시 기자는 “지난달 14일 여론조사에서 오키나와 주민 70%가 연안안에 반대했다”며 “1999년만 해도 기지이전 찬성 의견이 더 많았지만 주민들의 투쟁이 여론의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나미네 게이이치 현 지사는 중앙 정부와 타협해 지난 주 ‘연안안’에 조건부로 합의했다”며 “하지만 11월 지사 선거에서는 이런 타협파 후보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3일 밤 찾은 헤노코 지역 해안의 천막농성장에서는 주민들의 투쟁 열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기를 안은 여성에서 70대 노인까지 50여명의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미군기지 이전 반대 투쟁을 이끌고 있는 주민대표 아사토미 히로시의 연설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인근 미군 슈와브 기지 앞에서 촛불 집회를 열려다 갑자기 쏟아진 비 때문에 자리를 옮긴 주민들은 밤 10시가 넘어 행사가 끝날 때까지 거의 자리를 뜨지 않았다. 이런 끈질김이 미군과 일본 정부를 상대로 성과를 끌어내는 힘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오키나와/글·사진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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