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에 있는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시설 모습. 일본원연 누리집 갈무리
일본 혼슈 북동쪽 끝에 도끼 모양을 한 아오모리현 시모키타반도에는 ‘롯카쇼무라’라는 마을이 있다. 바람이 강하고 기온이 낮아 농사짓기가 어려운 척박한 땅이다.
일본 변방의 한적한 이 마을이 이따금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1956년 이후 70년 가까이 이어져온 일본 원자력 정책의 핵심인 ‘핵연료 사이클 정책’을 떠받치는 ‘롯카쇼 재처리 시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핵연료 사이클 정책이란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만든 뒤 이를 특수 원자로인 ‘고속증식로’에 넣고 발전하면, 추가적인 에너지 투입 없이 영원히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꿈의 에너지 계획’을 뜻한다. 기술적 결함 등으로 26번이나 연기된 롯카쇼 재처리 시설은 내년 상반기에 또다시 완공이 예고된 상태다.
도쿄전력 등 일본 원전 대기업들이 투자한 일본원자력연료주식회사(일본원연)가 운영하는 ‘롯카쇼 재처리 공장’은 이 정책의 두 기둥 가운데 하나인 사용후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해 내는 시설이다. 공장이 가동되면, 일본은 매년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다만 핵연료 사이클 정책이란 ‘방패막이’가 있기 때문에 일본이 플루토늄을 보유하는 것은 핵무기가 아닌 이 정책의 또 다른 기둥인 ‘고속증식로’를 통해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가능해진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통해 핵 보유가 허용되는 5개국을 제외하고 상업용 재처리 공장을 가진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
현재 일본원연은 도쿄돔 160개 크기인 약 750만㎡의 광활한 부지에서 5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최종 처분(1992) △우라늄 농축(1992)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임시 보관(1995) 시설은 이미 완공돼 가동 중이고, 핵심 시설인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우라늄·플루토늄 혼합산화물(MOX) 연료 공장은 내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여전히 공사 중이다. 한겨레는 지난 1일 현장을 방문해 재처리 시설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일본원연의 ‘홍보(PR)센터’를 살피고, 지역 주민들을 두루 만났다. 센터 3층에서 본 롯카쇼무라 재처리 시설은 공장 곳곳에서 여러 대의 크레인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국이 이 시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방사성 물질 오염수 바다 방류 문제다. 지난 8월 말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삼중수소(트리튬)가 포함된 오염수의 바다 방류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 공장이 돌아가면, ‘사용후 핵연료 저장→절단 뒤 질산으로 용해→우라늄·플루토늄 분리·정제→고준위 폐액 유리고체화’ 등의 작업 과정에서 1년에 약 9700조베크렐(㏃: 방사성 물질의 초당 붕괴 횟수 단위)의 삼중수소가 방류된다. 후쿠시마 제1원전(연간 22조베크렐)보다 무려 440배 이상 많은 양이다. 크립톤85, 탄소14, 요요드 등 인체에 치명적인 다른 방사성 물질도 같이 나온다.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2020년 7월 재처리 공장의 안전대책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뒤 생긴 새로운 규제 기준에 적합하다는 ‘합격 결정’을 내리긴 했다. 실질적인 공장 가동을 위해선 앞으로 또 다른 심사가 남아 있는데, 이 과정이 만만치 않다. 핵연료 재처리의 과정이 복잡하다 보니, 심사 대상이 되는 건물 수만 20동가량 된다. 안전상 중요한 기기도 1만개가 넘어 내년 상반기 완공이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본원연의 부실한 준비도 공사를 늦추고 있다. 야마나카 신스케 원자력규제위원장은 지난 3월 “재처리 공장 관련한 서류 6만 페이지 가운데 3천 페이지 정도가 내용이 잘못됐거나 누락됐다”며 공개 경고했다.
두번째 이유는 핵무기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추진해온 핵연료 사이클 정책이 가동되려면, 재처리 공장뿐 아니라 플루토늄을 이용해 만든 혼합산화물로 발전을 할 수 있는 특수 원자로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 과정이 쉽지 않았다. 일본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던 ‘꿈의 원자로’인 고속증식로 ‘몬주’(후쿠이현 쓰루가시)는 2016년 12월 폐로가 결정됐다. 1조엔(약 8조7천억원)이 투입된 몬주는 1995년부터 가동됐지만 잦은 고장·사고로 실제 발전기간은 250여일에 불과했다. 일본 정부는 핵연료 사이클 정책을 이어가기 위해 후속 증식로를 만든다는 계획이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플루토늄을 일반 원전에서 소비하는 ‘플루서멀’(Plu-thermal)도 한계가 많다. 재처리 공장이 가동되면 매년 원자로 10여기가 사용할 수 있는 혼합산화물을 만들 수 있지만, 현재 가동 중인 원자로 10기 가운데 이 연료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은 ‘4기’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시설이 완공되면, 아직 분명한 사용처가 없는 플루토늄이 쌓이게 된다. 일본은 이미 재처리 시설이 있는 영국·프랑스와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위탁 계약을 맺어 지금까지 약 46t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 수천발의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는 양인 만큼, 국제사회의 시선이 따가울 수밖에 없다.
아오모리에서 만난 아사이시 고지(82) ‘핵연료 사이클 저지 1만명 소송 원고단’ 대표(변호사)는 “롯카쇼무라 재처리 사업은 사실상 파탄이 난 상태다. 다만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중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다 보니 지역에선 재처리 시설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 아오모리현을 포함한 일본 전역의 시민들은 1993년에 이어 2021년엔 새 규제가 적용된 재처리공장 허가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고노 다로 디지털상 역시 2021년 9월 일본 총리를 결정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핵연료 사이클은 빨리 손을 봐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가 재처리 공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데는 안보상 이유가 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1988년 7월 미-일 원자력협정을 통해, 일본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수용하는 조건으로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추출’ 권한을 ‘포괄적’으로 인정했다. 일본은 이 권한을 활용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핵무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 협정은 30년 뒤인 2018년 7월 한차례 자동 연장된 상태다. 이에 견줘 한국은 2013년 2월 말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플루토늄 추출이 쉽지 않은 ‘파이로프로세싱’ 방식의 재처리 권한이라도 인정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2년간의 치열한 협상 끝에 2015년 4월 이를 거절한 바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핵연료 사이클 정책을 포기하는 순간, 일본은 미국이 허용해준 재처리 권한을 빼앗길 수 있다. 아사이시 ‘1만인 소송 원고단’ 대표는 “재처리시설이 막히면 ‘핵연료 사이클’이라는 국책 사업은 끝이 난다. 일본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어렵게 따낸 재처리 권한을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문인지 1993년 첫 삽을 떠 애초 1997년 완공을 목표로 했던 공장은 반복적인 기술적 결함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의 영향으로 26번이나 완공이 연기됐지만, 사업은 중단되지 않고 있다. 이 과정에서 건설비는 애초 7600억엔에서 3조2100억엔(약 28조원)으로 커졌고, 가동 뒤 40년간의 운영비 등 총사업비는 약 14조7천억엔(약 128조원)까지 늘었다.
아오모리현 주민들 “핵폐기물 영구저장시설 들어서나” 불안
지난 1일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에 있는 일본원연이 운영하는 ‘홍보(PR)센터’에서 바라본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시설. 공장 곳곳에선 여러 대의 크레인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롯카쇼무라/김소연 특파원
아오모리현 롯카쇼무라의 또 다른 근심거리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최종처분시설(영구저장시설) 문제다. 일본 정부가 최종처분시설을 이 지역에 짓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현재 ‘롯카쇼 재처리 공장’에는 전국 원전에서 옮겨온 핵연료 폐기물 약 3천t이 보관돼 있다. 저장 용량을 거의 꽉 채운 상태다. 일본원자력연료주식회사(일본원연)는 1998년 롯카쇼무라와 “재처리 사업이 곤란해질 경우 사용후 핵연료의 시설 외 반출을 포함해 신속하게 조처를 강구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 즉, 재처리 공장을 포기하면 여기에서 보관하고 있던 핵연료 폐기물 3천t을 각 원전으로 되돌려보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일본 전역의 원전에서 자체 보관 중인 핵연료 폐기물의 저장 능력 역시 약 80%에 이르고 있다. 롯카쇼무라로 보낸 폐기물을 돌려받으면, 원전 가동을 멈춰야 하는 위기에 몰릴 수 있다.
아오모리에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 고무라 가즈오(76) ‘핵쓰레기로부터 미래를 지키는 아오모리현민회’ 공동대표는 “아오모리에 최종처분시설이 생길 우려가 있어 올 4월 이 모임이 만들어졌다”며 “시모키타반도 주변에 원전 관련 시설이 집중적으로 모여 있다. 하나를 받기 시작하면 그다음은 굉장히 쉬워진다”고 우려했다. 아오모리현 시모키타반도엔 롯카쇼 재처리 공장뿐 아니라, 오마 원전(심사 중), 무쓰 방사성폐기물 중간저장시설(공사 중), 히가시도오리 원전(공사 중단) 등 원전 시설이 모여 있다.
그는 “지역에선 롯카쇼 재처리 공장의 가동이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며 “이 사업이 시작되거나 혹은 중단되더라도 아오모리에 최종처분시설이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원연과 아오모리현은 롯카쇼무라에 일시 보관 중인, 영국·프랑스에서 반환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2045년까지 최종처분시설로 빼기로 약속한 상태다. 하지만 일본엔 아직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최종처분시설이 없고, 지금부터 만든다고 해도 최소 30년 이상이 걸린다. 고무라 대표는 “방사성폐기물을 반출해야 한다는 약속이나 각서는 법률이 아니기 때문에 지켜지지 않을 수 있다”며 “후쿠시마 오염수도 봤지 않냐. 도쿄전력 사장이 어민들과 문서로 약속했지만 무시됐다”고 말했다.
일본 원전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카나이 히로시(75) 아오모리현의회 의원은 “원전으로 전기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아온 곳은 대도시다. 하지만 원전이 안전하다고 주장하면서도 대도시엔 관련 시설이 없다. 보조금을 이용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방에 모든 것을 떠맡기는 구조가 문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원전 정책과 방사성폐기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나라 전체가 새로운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롯카쇼무라/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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