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3일 오후 임시국회 개원에 맞춰 향후 국정 운영 방침을 밝히는 국회 소신표명 연설을 하고 있다. 도쿄/AP 연합뉴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향후 국정 운영 방침을 밝히는 국회 소신표명 연설에서 한국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과의 개인적인 신뢰 관계를 지렛대로 폭넓은 협력을 심화해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 관계 최대 쟁점이었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윤 정부가 일방적인 양보안을 추진한 뒤, 기시다 총리의 첫 국회 연설이다.
기시다 총리는 23일 오후 개원한 임시국회 소신표명 연설에서 한국에 대해 이같이 언급하며 “8월에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3국 파트너십의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결의를 대내외에 보여줬다”며 “경제안보를 비롯해 3국의 전략적 협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한·중·일 관계에 대해서도 전진시켜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시다 총리의 발언은 그동안 일본 총리들이 국회 연설 중 한국 관련해 언급한 표현과 상당히 달랐다. 기시다 총리는 올 1월 정기국회 시정방침 연설에선 한국을 “국제사회의 다양한 과제 대응에 협력해야 할 중요한 이웃”이라며 “국교 정상화 이후 우호 협력 관계를 토대로 한·일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고 한층 더 발전시키기 위해 긴밀히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엔 ‘윤석열’이라고 한국의 대통령 이름을 직접 밝히며 한·미·일과 한·중·일 3국 관계에서 한·일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부각했다. 일본 총리가 국회 시정방침연설(연초 정기국회)과 소신표명연설(가을 임시국회)에서 상대국 지도자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는 경우는 이례적이다. 이전 한국 정부와 달리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등 역사 문제와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바다 방류 등 핵심 현안에 대해 일방적으로 양보하고 있는 윤 대통령을 치켜세우려는 모양새로 보인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3월 양보안은 한국 국내에선 사실상 파탄에 이른 상태다. 법원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판결금 수령을 거부하는 원고 4명에게 지급할 돈을 공탁하려 하자 이를 거부했고, 재단이 이에 이의신청을 하자 12번 모두 기각하는 판단을 내렸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은 시민 모금을 통해 돈을 끝까지 받지 않겠다고 한 원고 한 사람에게 1억원씩의 ‘응원금’을 전달한 상태다. 일본이 지금처럼 윤 대통령 한 사람에게 기대는 위태로운 외교를 이어가면, 양국 관계는 다시 한번 큰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역대 일본 총리들은 국회 연설에서 한·일 관계 상황에 따라 ‘기본적인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이나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 ‘가장 중요한 이웃’ 등의 표현을 써왔고, 관계가 악화되면 아예 생략하는 경우도 있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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