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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북-일, 3월·5월 두 차례 비밀 접촉했다”…아사히 보도

등록 2023-09-30 11:08수정 2023-09-30 20:54

양국 최대 현안인 ‘납치 문제’ 견해차로
의미 있는 후속 회담 이어지진 않은 듯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총리 관저 누리집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총리 관저 누리집

북한과 일본이 지난 봄 동남아시아에서 두번 비밀 접촉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양국 간 최대 현안인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견해차가 너무 커 의미 있는 후속 대화로 이어지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29일 1면 머리기사로 복수의 북일 관계 소식통을 인용해 일본 정부 관계자가 지난 3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동남아시아의 한 도시에서 북한 조선노동당 관계자와 비밀접촉을 했다고 전했다. 신문은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이 무렵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향한 환경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올 가을께 평양에 정부 고위당국자를 파견하는 문제를 한때 검토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마쓰노 히로카쓰 관방장관은 29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보도 내용은 알고 있지만, 문제의 성격상 언급을 삼가겠다”고 말했다.

양국 관계를 가로막는 가장 큰 문제는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의 평양 방북 때 북한이 공식 사죄한 납치 문제다. 북한은 당시 납치 피해자 5명의 생존 사실(이후 일본으로 귀국)을 전하며, 일본이 피해자라고 추정하고 있던 나머지 인물들은 숨졌거나 북한에 애초 입국하지 않았다고 밝힌 뒤 이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맞서 일본 정부는 ‘납치 문제는 일본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납치 문제의 해결 없이는 국교 정상화는 없다’, ‘납치 피해자가 전원 생존해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전원 귀환을 위해 노력한다’는 이른바 ‘아베 3원칙’을 내세우며 맞서는 중이다. 두 나라는 2014년 5월 스톡홀름 합의 등을 통해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양쪽의 입장이 너무 다르고 강경해 2016년 이후 의미 있는 정부 간 대화가 멈춰 서 있다.

2002년 9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사상 첫 양자 정상회담에서 ‘조일 평양선언’에 서명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평양/일본사진공동취재단
2002년 9월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사상 첫 양자 정상회담에서 ‘조일 평양선언’에 서명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평양/일본사진공동취재단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지난 봄에 이뤄진 두 차례 접촉에선 양쪽에서 소수 인원이 만나 양국 간 여러 현안에 대해 광범위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일본 정부에선 북한에서 나온 조선노동당 관계자들이 북한 내정에 대해 잘 알고 있어 김정은 위원장과 가까운 당 간부와 연결되는 인물이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흐름을 타고, 기시다 총리는 지난 5월27일 ‘납치피해자 국민대집회’를 통해 “조건을 걸지 않고 김정은 위원장과 직접 마주하겠다는 결의를 갖고 있다. 내 직할로 고위급 협의를 해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틀 뒤인 29일 박상길 외무성 부상이 담화를 내어 “일본은 ‘전제조건 없는 수뇌회담’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만 실지에 있어서는 이미 다 해결된 납치 문제와 우리 국가의 자위권을 놓고 문제 해결을 운운하며 관계 개선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며 “일본은 말이 아니라 실천 행동으로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묘한 입장을 내놓았다. 북-일이 공개적으로 이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주고 받자 한·일 언론과 전문가들은 북-일이 수면 아래에서 비밀 교섭을 하고 있다는 다양한 관측을 쏟아낸 바 있다. 결국 이 관측이 일정 부분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악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악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봄 북-일 접근을 좀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북한은 북-미 관계나 남북 관계가 꽉 막혔던 2014~2016년에도 북-일 관계를 움직여 장기화되는 고립에서 벗어나려 시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에도 납치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입장차가 너무 커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번에도 북한은 대일 접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크지 않다고 보고, 적어도 7월 이후엔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는 쪽으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지난 7월27일 ‘전승절’ 행사에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참석한 것을 계기로 13일 4년 만의 북-러 정상회담에 나섰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회담 이튿날인 14일 김정은 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통해 “두 나라 사이의 전략·전술적 협동을 더욱 긴밀히”하는 등 “만족한 합의와 견해 일치”를 봤다고 전했다. 북-러 간의 구체적인 합의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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