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로 불리는 일본 나가사키현 앞바다의 섬 하시마. 한겨레 자료사진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하시마(군함도) 등 조선인 강제동원 논란이 있는 근대산업시설과 관련해 곧 채택하는 ‘권고문’에서 일본에 대한 비판을 거의 삭제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재인 정부 땐 범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애써왔지만, 한·일 과거사에 대해 ‘양보’를 해온 윤석열 정부에선 이전처럼 집요한 노력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는 “외교 공세를 통해 한국에 반격한 결과”라는 자평을 내놓았다.
산케이신문은 12일 “세계유산위원회가 2021년엔 한국의 주장에 대한 일본 대응을 두고 불만을 표시했으나, (2년 만에 나오는) 이번 결의안엔 일본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내용”이 담겼다고 전했다. 실제 세계유산위가 지난 9일 누리집을 통해 공개한 ‘메이지 일본 산업혁명유산’ 세계유산 등재 후속 조처 관련 결정문 초안을 보면, 일본의 그동안 조처를 긍정적으로 소개하는 내용이 비중 있게 들어가 있다.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2015년 일본 정부의 약속에 따라 도쿄 신주쿠구에 2020년 설치된 산업유산정보센터의 전시 내용이 일부 변경된 점을 언급했다. 방문객들이 정보무늬(QR코드)를 통해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한·일 정부 대표가 했던 발언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새로 생겼고, 하시마 탄광 사고 기록에 조선인 노동자를 포함한 정보가 제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 대표인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대사는 2015년 7월 하시마 등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는 과정에서 “과거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 의사에 반해’ 동원되어 ‘강제로 노역’(forced to work)했던 일이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발언은 이전 전시에서도 패널에 소개돼 있던 내용이다.
유네스코는 이 같은 전시 내용 변경과 관련해 “당사국(일본)이 요구에 부응하는 일부 추가 조처를 했다”고 평하면서 “새로운 증언 검토 등 추가 연구와 자료 수집·검증뿐만 아니라 관련국(한국)들과 대화를 지속할 것을 독려한다”고 요구했다.
이런 내용이 담긴 결정문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지난 10일 시작된 제45차 세계유산위 회의에 상정돼 오는 14~16일에 채택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도쿄 신주쿠구 ‘산업유산정보센터’ 내부에 조선인 강제노동으로 악명이 높은 하시마(군함도)의 모습이 파노라마 영상으로 전시돼 있다.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이번 세계유산위의 결정문은 2년 전인 제44차 회의 때 채택된 내용과 상당한 격차가 있다. 당시엔 일본이 하시마 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 권고한 후속 조처를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해 ‘강한 유감’(strongly regrets)을 표명하고 충실한 이행을 촉구한 바 있다.
그러면서 산업유산정보센터에 1940년대 한국인 등이 강제노역한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조처가 불충분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전시 등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지난해 11월 “한국인의 동원은 적법했고, 차별도 없었다”는 기존 주장을 그대로 반복한 보고서를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일본이 여전히 ‘강제동원과 조선인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데도, 전시 내용을 일부 바꾼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셈이다.
일본은 이를 ‘외교 승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지난달 라자르 엘룬두 아소모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국장을 (도쿄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로 초청하는 등 외교 공세를 통해 한국에 대한 반격을 노렸다”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도 “일본의 노력을 직접 전달하고 판단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도 결정문 협의 과정에 의견을 밝혀 온 것으로 전해졌지만, 일본의 입맛에 맞게 초안이 작성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결정문이 최종적으로 채택되면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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