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 지난달 16일 일본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사진을 찍으며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이 11일 공개한 올해 ‘외교청서’에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양보’에 대해서만 명시하고, 자신들이 언급했던 ‘과거 담화 계승’ 부분은 쏙 빼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의 ‘항복 외교’가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 없이 한국의 일방적인 양보로만 끝났음이 명확히 확인된 모습이다. 현재 양국 사이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독도 영유권 분쟁, 일본군 ‘위안부’ 합의 복원 시도 등 하나하나 뼈를 깎는 난제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섣부른 양보의 부작용이 더 커질 수밖에 없게 됐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이날 오전 열린 각의(국무회의)에서 보고한 2023년판 ‘외교청서’를 보면, 지난달 한국의 큰 양보가 이뤄진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과 관련한 부분이 새롭게 추가됐다. 지난해 5월 한국에서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외교당국 간 긴밀한 소통과 한-일 정상회담 등을 통해 양국이 이 문제의 조기 해결을 모색해왔다고 설명한 뒤, “한국 정부가 3월6일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식 표현) 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의 설명대로 박진 외교부 장관은 당시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과 관련해 일본 피고 기업이 아닌 한국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원고인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는 양보안(‘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다. 박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국내 반발을 우려한 듯 “이것은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닌 진정한 시작”이라며 “앞으로 이어질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의 호응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하야시 외무상은 당일 “일-한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을 포함한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말하는 데 그쳤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16일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총리와 직접 만났지만 일본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1998년 10월 발표된 김대중-오부치 파트너십 선언에 담긴 ‘지난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의 뜻을 제 입으로 언급하진 않은 것이다. 이런 냉담한 태도에 일본의 주류 언론에서도 ‘실망스럽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일본을 두둔하기에 바빴다. 지난달 21일 국무회의 머리발언에서 작심한 듯 “친구 관계에서 서먹서먹한 일이 생기더라도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계속 만나 소통하고 얘기하면 오해가 풀리고 관계가 복원”된다며 “한-일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날 ‘외교청서’에 한달 전 마지못해 언급했던 구절까지 삭제하며 한국의 요청에 호응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한-일 간 역사 문제에 대한 최종 목적이 ‘기억을 통한 화해’가 아닌 ‘진실의 망각’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대신 하야시 외무상이 “한국 정부가 (3월6일) 발표한 조치를 2018년 대법원 판결로 인해 매우 경색된 일-한 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회복하기 위한 것으로 평가했다”고 적었다. 일본이 이번 사태에 대해 ‘한국이 지난 과오를 뉘우치고 양보했으니,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를 수용한다’는 식의 인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도와 관련해서도 부당한 주장을 이어갔다. ‘외교청서’에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한국은 경비대를 상주시키는 등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 없이 다케시마 불법 점거를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이 합의를 착실히 실시해가도록 강하게 요구해간다는 방침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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