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강 중국 외교부장(오른쪽)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이 2일 중국 베이징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중국 정부가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규제 강화 방침을 발표한 일본 정부를 상대로 보복 조치에 나설 가능성을 시사했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중-일 사이에 새로운 갈등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중국 상무부는 4일 밤 기자 질문에 대한 대변인의 답변 형태로 낸 입장문에서 “일본 쪽이 고집스럽게 중-일 반도체 산업 협력을 인위적으로 저해할 경우 중국 쪽은 과단성 있는 조처를 취해 자신의 합법적 권익을 결연히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본이 제기한 조치는 본질적으로 개별 국가의 협박 아래서 중국에 해를 가한 행위”라며 “시정하라”고 촉구했다. 3일엔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기자회견에서 일본에 대해 “중국의 이익이 현저히 훼손된다면 중국은 좌시하지 않고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이 일본을 상대로 ‘보복조치 시사’ 등 연일 강도 높은 비난에 나선 것은 일본 정부가 미국과 보조를 맞춰 첨단 반도체 장비에 대한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이 중국을 방문하기 직전인 지난달 31일 각의(국무회의)에서 첨단 반도체를 만들 때 필요한 핵심 장비 23개 품목에 대해 수출규제를 강화하겠다고 결정했다.
수출규제 시행령이 7월부터 시행되면 우방국 등 42개 국가·지역을 제외하고는 품목마다 수출할 때 개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수출규제 대상에 중국 등 특정 국가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중국을 겨냥한 조치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첨단 반도체 기술과 장비 등의 대중국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고, 핵심 제조업체가 있는 일본과 네덜란드에도 동참을 요구한 바 있다.
올해 여름께 네덜란드도 수출규제에 나설 예정이라, 중국이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상대로 경고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미국이 2019년 이후 제재를 강화하면서 첨단 반도체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신장비 대기업인 화웨이가 ‘5G’를 지원하는 핸드폰을 출시하지 못하는 상태고, 지난해 파산·폐업한 중국 반도체 관련 기업은 전년보다 68% 증가한 약 5700개에 달했다. 세계 첨단 반도체 장비 시장을 이끄는 일본·네덜란드까지 규제에 동참하면 중국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중국을 특정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은 4일 기자회견에서 “중국쪽 반응은 알고 있지만, 이번 조치는 국제적 평화와 안전을 유지한다는 관점에서 엄격한 수출관리를 하는 것이다. 특정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요미우리신문>은 “중국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만약 중국 쪽이 보복조치를 취하면 도쿄일렉트론 등 반도체 제조장치 업계의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했다.
미국·일본 등 주요 7개국(G7)은 중국·러시아를 염두에 두고 특정국이 경제적 보복에 나설 경우 공동으로 대항하는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에 뜻을 모았다. 주요 7개국은 4일 화상으로 경제장관회의를 개최하고 공동 성명에서 “경제적 위압에 따른 어떠한 일방적 현상변경 시도에 대해 강하게 반대한다”며 “이에 대항하기 위해 기존 수단을 활용하고, 필요에 따라 새로운 수단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회의에 참석한 니시무라 야스토시 경제산업상은 “경제적 위압에 집단으로 대처하고 피해를 완화하기 위해 공동 대응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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