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개최된 주요 7개국(G7) 화상 정상회의에서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일본 총리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모습. 일본 총리 관저 누리집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1일 러시아의 침공이 이뤄진 뒤 처음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러시아에 맞선 서구의 연대를 과시했다. 이날 방문으로 주요 7개국(G7) 정상 모두가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고 있는 키이우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얼굴을 마주하게 됐다. 기시다 총리는 한국·독일·인도에 이어 우크라이나·폴란드 정상들과 회담에 나서는 등 ‘광폭 외교’를 이어갔다.
일본 외무성은 21일 자료를 내어 “기시다 총리가 젤렌스키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정상회담을 한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리더십 아래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우크라이나 국민의 용기와 인내에 경의를 표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연대와 지원 의사를 직접 전달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 변경을 단호하게 거부하고, 법치주의에 기초한 국제 질서를 지켜내겠다는 결의를 다시 확인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기시다 총리의 이번 키이우 방문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20~22일 러시아 모스크바 방문과 같은 시기에 이뤄져,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미국 등 ‘주요 7개국’과 서로 전략적 관계를 강화하고 있는 중-러 양쪽으로 진영화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인도를 방문 중이던 기시다 총리는 애초 이날 오후 귀국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전 공지 없이 전용기의 기수를 폴란드로 돌렸다.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이날 정오께 여당 관계자를 인용해 “기시다 총리가 21일 새벽 전세기로 인도를 떠나 폴란드 제슈프에 도착한 뒤, 프셰미실로 자동차로 이동해 오전 9시 반께 열차를 타고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향했다”는 속보를 내보냈다. 일본 언론들은 이어 키이우에 도착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에 나서는 기시다 총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정상이 전쟁이 벌어지는 나라 또는 지역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이다.
올해 주요 7개국 정상회의 의장인 기시다 총리는 5월 히로시마에서 회의가 열리기 전에 우크라이나를 방문하기 위해 일정을 조정해왔다. 그동안 안전 문제로 방문을 미뤄왔지만 지난해 4월 영국, 5~6월 캐나다·프랑스·독일·이탈리아에 이어 올해 2월 고령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까지 전격 키이우를 찾자, 더는 방문을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은 “5월 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선 우크라이나 문제가 주요 의제가 된다. 총리는 우크라이나를 직접 방문해 주요 7개국이 결속해 지원하는 모습을 세계에 전달하고 싶은 생각”이라고 전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기시다 총리의 ‘광폭 외교’다. 기시다 총리는 1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두 나라의 핵심 현안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를 놓고 한국의 확실한 양보안을 끌어낸 뒤, 18일 도쿄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독·일 정상은 양국 각료들이 참가하는 첫 ‘정부 간 협의’를 열고 경제·안보 협력을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20일엔 뉴델리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만나 중국을 겨냥한 일본의 외교정책인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 실현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다. 기시다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이어 22일 폴란드를 찾아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와 정상회담을 열고 우크라이나 지원과 러시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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