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학자, 교사, 시민활동가 등이 12일 도쿄 전국교육문화회관에서 ‘제20회 역사 인식과 동아시아의 평화포럼’을 개최했다.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21 제공
“동아시아는 힘의 균형이 깨지면 언제든지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미-중 간의 대결 구도를 완화하고, 평화와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이지원 아시아 평화와 역사 연구소 이사장은 12일 도쿄 전국교육문화회관에서 개최된 ‘제20회 역사 인식과 동아시아의 평화포럼’에 화상으로 참여해 “국제사회가 협력에서 대결 구도로 빠르게 재편되면서 동아시아는 다시 한번 위기를 맞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평화포럼은 한·중·일 학자, 교사, 시민활동가 등이 동아시아의 평화와 미래를 공유할 수 있는 역사 인식을 논의하기 위해 2002년 만든 모임이다. 2001년 일본 우익단체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주도해 만든 후소사의 첫 역사 교과서가 검정에 합격해, 한·중·일 사회에 충격을 줬다. 이 때문에 2002년 중국 난징에서 열렸던 1회 포럼에선 일본 우익들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를 주로 다뤘다.
포럼은 매년 한·중·일을 오가며 열리고 있다. 20년을 맞은 올해는 ‘전쟁 없는 세계를 위한 국제사회와 동아시아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대만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갈등,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등 최근 동아시아의 무력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는 속에서 한·중·일 시민들이 평화를 호소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 것이다. 12~13일 도쿄에서 열린 포럼엔 코로나19 영향으로 중국 등 일부 참가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참여했다. 코로나19 세계적 대확산 여파로 2020년에는 포럼이 열리지 않았고 지난해에는 온라인으로 열렸다.
이지원 이사장은 이날 발표에서 “동아시아는 20세기 제국의 시대, 그리고 냉전의 시대를 겪으면서 가해·피해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겪은 경험이 있다”며 “한·미·일과 북·중·러 사이에 냉전적 구도가 강화되면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평화는 이뤄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 간 힘의 논리 앞에 시민들의 연대가 아직 힘을 발휘하지 못해 무기력할 수 있지만, 좌절하지 말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호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도 “평화를 이야기하는 시민사회의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며 “국경을 넘어 교류하고 연대하는 시민사회 조직들이 갈등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쪽 하바 구미코 아오야마학원대학 명예교수도 동아시아의 전쟁 가능성에 대해 우려했다. 그는 “전쟁은 아무리 작은 분쟁으로 시작해도 한번 시작되면 멈추기 힘들다. 동아시아에선 중국을 적으로 해 대만과 오키나와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바 교수는 “오키나와를 허브로 일·중·한의 시민, 지방정부, 청년 등이 참여하는 ‘평화 회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평화를 생각하는 다양한 단체들이 힘을 모아 전쟁에 반대하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 쪽 참가자인 허우중쥔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연구원도 평화를 강조했다. 허우 연구원은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은 이사를 갈 수 없는 운명적인 이웃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아픔을 겪은 3국의 지성인들은 평화 공존이 동아시아가 나아갈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우 연구원은 “동아시아 내부에서 패권을 노리거나 외세를 끌어들여 이웃 나라를 봉쇄하려는 냉전적 사고 모두 동아시아에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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