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상징과도 같은 금 채굴 현장이었던 브이(V)자 산봉우리 ‘도유노와레토’ 등 30곳 이상이 붕괴나 손상 등으로 정비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도시 누리집 갈무리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동원이 대규모로 이뤄졌던 니가타현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신청을 앞두고 크게 고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5년 ‘하시마’(군함도)를 등재할 때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 등 유산과 관련한 ‘모든 역사’를 전하겠다는 약속을 스스로 저버린 뒤 유네스코의 ‘경고’를 받은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등의 문제제기로 이번에도 같은 논란이 불거지면 일본은 매우 ‘수세적 입장’에 서게 될 수밖에 없다.
일본 문화심의회가 지난달 28일 후보로 선정한 사도광산을 대상으로 2023년 세계문화유산 등록심사를 받으려면 일본 정부가 다음달 1일까지 유네스코에 공식적으로 추천서를 내야 한다. 실제 등재 여부는 유네스코 자문기관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심사와 권고를 통해 최종 결정된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 관계자는 최근 <아사히신문>에 “매우 고민스러운 일”이라며 사도광산을 추천할 경우 “한국 쪽의 반발이 불가피하고, 한-일 사이에 새로운 (갈등의) 불씨가 생길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2015년 7월5일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회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대사가 한국인의 강제 노역 사실을 인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일본 정부가 곤혹스러워 하는 것은 이 문제가 ‘한-일 관계’에 악재가 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2015년 군함도 등재 때 일본이 스스로 한 약속을 스스로 저버리며, 국제 사회의 감시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2015년 7월 군함도를 포함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23곳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때 “1940년대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던 일이 있었다.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인포메이션센터 설치 등의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도쿄 신주쿠에 문을 연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 등 역사를 왜곡하는 내용들로 채워졌다. 유네스코는 현장 조사 등을 실시한 뒤, 지난해 7월 일본에 대해 ‘모든 역사를 기억한다’는 약속의 충실한 이행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한국 외교부 역시 지난달 28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 일을 문제 삼으며 ‘약속을 먼저 지키라’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는 이와 관련해 올해 12월1일까지 이행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세계유산위원회는 내년 예정된 제46차 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시 검토한다. 유네스코에서 군함도와 함께 사도광산까지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을 보면, 지난해 11월 비공개로 진행된 문화심의회 회의에서 외무성 담당자가 “한국이 이미 강한 경계의 눈초리로 사도(광산) 건을 주시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제외하고 시기를) 에도시대로 좁혀도 피해갈 수 없다”고 말한 내용이 확인된다. 사도 광산에선 1939년 2월부터 총 1200여명의 조선인 강제동원이 이뤄졌다는 게 구체적인 자료로 입증돼 있다.
국제적 비난이 우려돼 추천서를 내지 않으면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된다. 니가타현과 사도시는 사도광산이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재 목록에 등재된 뒤 2015년부터 4차례 경쟁에 밀려 탈락했다가 이번에 겨우 후보로 선정됐다. <아사히신문>은 “추천을 보류하면 여야 대결이 펼쳐지는 오는 5월 니가타현 지사 선거나 여름(7월)의 참의원 선거에 영향을 줄 것을 정부가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일본 내에선 사도광산 유적의 안전성 문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사도시가 2020년 3월 작성한 ‘유적 정비 기본계획서’를 보면, 사도광산의 상징과도 같은 금 채굴 현장이었던 브이(V)자 산봉우리 ‘도유노와레토’ 등 30곳 이상이 붕괴나 손상 등으로 정비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도유노와레토의 경우 일부 붕괴가 시작돼 이를 유지하려면 산 경사면의 붕괴 방지 조치가 필요한 상태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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