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맨 왼쪽)가 지난 2019년 10월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일제 강제동원 문제해결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들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3년을 맞은 가운데 ‘피고 기업의 사과를 시작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한국의 제안을 일본이 이미 거부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요미우리신문>은 28일 한·일 소식통을 인용해 “피고 기업의 사과 등을 해결의 실마리로 삼는 방안은 한국 정부가 이미 물밑에서 일본 쪽에 타진했지만 일본 쪽이 거부 의사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원고 변호사에 따르면 일본 기업이 화해 협의에 응하면 ‘그동안 현금화 절차를 중단한다’는 안도 나오고 있다”며 “협의에 응하게 해 (기업 쪽의 ) 사죄의 말을 끌어 낼 생각으로 보여진다”고 전하며 이 같이 밝혔다. 일본 정부가 이미 이 제안을 거부했기 때문에 “원고 쪽이 요구하는 화해 협의는 실현될 것 같지 않다”고 전망한 것이다.
피고 기업의 사과를 시작으로 꽉 막혀 있는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움직임은 지난해부터 있었다. 지난해 8월 대법원 판결 2년을 즈음해서 강제동원 피해자 원고쪽 변호인 중 한 명인 임재성 변호사는 <한겨레>에 ‘
일본제철 대표이사님, 먼저 사과해주십시오’라는 기고문을 썼다. 임 변호사는 이 글에서 “100살을 바라보는 노인에게(소송 승소자 이춘식 할아버지) 당신의 젊은 날 고통을 잊지 않고 있다고 진심으로 말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어 “사과만으로 판결 이행이 완료됐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증폭되는 갈등 속에서 일본제철 대표이사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사과’라는 행위 이후, 우리는 분명 다른 관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제동원 판결을 놓고 한-일이 전혀 접점을 찾지 못하자, 원고 쪽이 문제 해결을 위해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제안한 것이다. 임 변호사의 기고 뒤 전문가들도 피고 기업의 사과를 전제로 배상에 대한 재원 문제는 열어놓고 논의하자는 의견들이 나왔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배상·보상 문제 등에서 한국 쪽이 먼저 일본이 납득할 수 있는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만 되풀이 했다. 그러자 임재성 변호사는
7일 <한겨레> 기고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와 일본 기업들이 직접 만나서 논의하는 자리가 책임 있게 성사된다면 논의 기간 중 일본 기업 자산에 대한 현금화 절차를 정지하겠다”는 새 제안을 내놨었다.
한편 대법원 판결 3년을 맞아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사회단체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판결이 나온 지 3년이 지났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비판하며 “피해자분들이 돌아가신다고 해도 강제동원 문제는 결코 끝나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3년 전인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춘식(97) 할아버지 등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피해자들에게 각각 1억원씩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확정했다. 원고들은 현재 피고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추적해 압류와 강제매각 등 강제집행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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