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겨냥한 4개국 안보회의체 쿼드에 참여하고 있는 미국, 인도,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이 지난해 10월 인도양의 벵골만에서 말라바르 연합훈련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일본 자민당이 방위비(국방예산)를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으로 올리고 현행 ‘방위 정책’을 근본적으로 손보겠다는 공약을 내건 것은 일본이 미국과 힘을 합쳐 동중국해 등에서 거세지는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겠다는 결의를 과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앞선 4월 미-일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개한 공동문서에서 52년 만에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언급하면서 “일본은 동맹 및 지역의 안전보장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자신의 방위력을 강화하기로 결의했다”고 선언했다. 이 결의를 이행하는 구체적인 조처를 하나씩 취해가겠다는 것이다.
12일 공개된 자민당의 정책공약집인 ‘자민당 정책 뱅크’를 보면, 일본이 대만해협을 포함한 동중국해에서 진행 중인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에 매우 심각한 ‘안보 불안’을 느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민당은 “중국의 급격한 군비 확대, (중-일 간 영토 분쟁이 진행 중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대만 주변 등에서 급속히 활발해진 군사 활동, 힘을 배경으로 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진전, 최첨단 기술을 구사한 ‘전쟁 방식’ 변화 등으로 인해 안보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의 안보 태세를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이 이런 결단을 내린 것은 필립 데이비슨 전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관이 3월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중국이 6년 이내’에 대만을 침공할 수 있다며 미-중 신냉전의 최전선인 동중국해의 엄혹한 안보 현실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일본 방위 전문가들이 앞다퉈 나서 “대만 유사사태(전쟁)가 발생하면 일본이 제3자로 있을 수 없다”며 정부의 신속한 대응을 촉구했다. 이후 자민당 정무조사회는 지난 5월 ‘격변하는 안전보장 환경에 대응하는 방위력의 근본적인 강화를 위한 제언’이라는 문서를 통해 일본이 “방위관계비를 근본적으로 증액해야 한다”고 밝혔고, 자민당 외교부회의 대만정책검토프로젝트팀은 대만 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법적 정비를 서둘러 마칠 것’을 요구했다.
자민당의 이날 공약은 이 요구에 충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먼저, 방위비의 대규모 확충이다. 일본 <방위백서>(2021년 판)를 보면, 1995년부터 올해까지 중국의 국방비는 14배, 한국은 3.9배, 미국은 2.7배 오르는 사이 일본의 증가율은 1.8배에 그쳤다. 국내총생산 대비 방위비의 비율을 비교해 봐도 일본은 0.95%로 미국(3.29%), 중국(1.25%), 한국(2.61%)보다 낮다. 자민당의 공약은 일본 방위비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의 목표 수준인 2%로 맞추겠다는 뜻이다. 두번째는 ‘방위 정책’의 대폭 수정이다. 일본 외교·안보정책의 큰 틀인 국가안전보장전략은 동중국해에서 중국의 군사적 움직임이 지금처럼 노골적이지 않았던 2013년 12월 책정된 것이다. 그 하위개념인 방위계획대강, 이에 기초해 자위대가 갖출 무기체계를 정해 둔 ‘중기방위력정비계획’은 그 뒤인 2018년 12월 한차례 개정됐다.
일본이 평화헌법의 제약을 사실상 일탈하는 군비 강화에 나서면서 한국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일본의 군비 강화는 중국과 북한을 자극해 이미 시작된 지역 내 군비경쟁을 더 심각하게 몰아갈 수 있다. 또다른 문제는 ‘적기지 공격 능력’이다. 자민당은 공약에서 “상대 영역 내에서 탄도미사일 등을 저지하는 능력 보유를 포함해 억제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새로운 대응을 추진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는 북한 등이 미사일 공격을 가할 징후를 보일 경우 일본이 원점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겠다는 의미다. 향후 일본이 북한의 도발에 과잉 대응하면, 한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한반도에서 참혹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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