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확산과 함께 지구촌 차원의 양극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대외원조가 국제사회의 주된 관심사가 됐다. 올해부터 선진국들은 향후 10년간에 걸친 대외원조 확대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한다. 한국 정부도 최근 대외원조 로드맵을 완성했다. 최근의 빈곤국 지원 흐름과 한국의 현주소, 과제를 세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빈곤 감축 위한 대외원조 국제사회 이슈로
OECD 다크·일본·미국 등 앞다퉈 지원 확대
빈국 제도·관리체제 개선 통해 원조 효율 높여야
2003년 자원봉사를 위해 아프리카 카메룬 외무부에 도착한 설재호(27)씨는 최신 컴퓨터로 가득찬 사무실을 보고 깜짝 놀랐다. 물자가 턱없이 부족할 것이라는 예상이 크게 빗나갔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2년 동안 최신 사양의 컴퓨터들은 끊임없이 들어왔다. 선진국들이 아프리카 원조 규모를 늘리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는 “심지어 나사 하나, 형광등 하나까지 모두 외국에서 들어올 정도로 원조 손길이 구석구석까지 뻗쳐 있다”고 말했다.
전세계 빈곤 감축을 위한 대외원조가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유엔을 비롯해 주요 국제회의에서는 으레 ‘대외원조’가 주요 의제로 채택되고 있다. 선진국들은 2010년까지 빈곤국 원조 규모를 2004년에 견줘 60%가량 더 늘리기로 합의했다.
이들의 대외원조는 세계화 확산과 맞물려 있다. 선진국이 주도하는 세계화가 지구촌의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시켰다는 목소리가 1990년대 중반부터 높아지면서 대외원조에 부쩍 큰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지구 차원의 양극화 해소 없이는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도 없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급증하는 대외원조=지난해 9월 유엔 특별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은 2015년까지 전세계 빈곤을 절반으로 줄이자는 내용의 ‘새천년개발목표’ 달성 의지를 재확인했다.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서는 최빈국들의 부채를 모두 탕감해주기로 했다. 선진국들의 모임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산하에 개발원조위원회(다크)를 두고 있다. 이 모임 참가국들은 2004년 국민총소득 대비 0.25%(795억달러)인 공적개발원조 규모를 올해 0.3%(975억달러), 2010년 0.36%(1281억달러)로 확대할 방침이다. 이는 1961년 다크 설립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대외원조 확장이다. 유럽연합은 2015년까지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국민총소득 대비 0.7%로 끌어올릴 작정이다. 공적개발원조란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의 개발과 발전을 위해 돈이나 물품, 기술 등으로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아일랜드·스페인·벨기에·핀란드는 이 목표를 2010년에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네덜란드는 2007년 안에 0.8%선까지 채울 계획이다. 일본은 아프리카 원조 규모를 3년 안에 두 배로 늘릴 예정이다. 세계 최대 원조제공국인 미국은 5년간 말라리아 퇴치에만 12억달러를 추가로 지출하기로 했다.
다크 회원국들만 원조를 늘리는 건 아니다. 비회원국들의 대외원조도 늘고 있다. 터키는 2003년 6700만달러에서 2004년 3억3900만달러로 무려 5배 가까이 늘렸다.
한국은 지난해 11월 국무조정실 공적개발원조 개선단에서 2004년 현재 0.06%(약 4억달러)인 대외원조 규모를 2009년까지 0.1%(약9억달러)로 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대외원조는 인도적 차원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원조제공국의 경제적 이해관계와도 맞닿아 있다. 리차드 매닝 다크 위원장은 “매일 수십억명이 굶고 있다는 것은 인류애 차원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문제”라며 “개도국과 빈국이 성장해야 국제 무역도 더 활성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외원조를 대하는 태도도 나라마다 각기 다르다.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서남아팀장은 “북유럽 나라들이 사회적 연대주의 차원에서 대외원조에 적극적이었다면, 일본은 동남아 국가에서 무역·투자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대외원조를 많이 활용한 나라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기업이 진출하기 전에 도로, 항구 등 사회간접자본을 유상원조(차관) 형식으로 지원한 뒤, 기업들이 시설투자를 하는 게 일본식 원조 방식이다.
내실 있는 원조 필요=원조사업이 오히려 현지 정부에 부담을 주는 경우도 있다. 장현식 한국국제협력단 정책실장은 “최근 베트남에는 100여개의 원조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베트남 정부로서는 100곳의 기관과 협력해 일을 추진하려면 행정적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국제 사회에서는 원조 확대 못잖게 원조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지난해 채택된 ‘원조 효과에 관한 파리선언’은 이를 감안한 국제적 기준을 마련했다는 평을 받는다. 파리 선언은 △2010년까지 개도국 75%가 실행 가능한 빈곤 감축 전략을 세우고 △중복되는 프로젝트 실행기관 수 3분의 2를 줄이며 △한 지역에서 중복되는 현지사무소 40%를 통합하고 △투명하고 감시할 수 있는 평가틀을 갖추지 않은 나라 3분의 1을 줄이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 대표부의 두정수 참사관은 “많은 빈국들은 지금 상태로는 원조 규모가 확대되도 관리 능력이 부족해 빈곤퇴치에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며 “단순 지식 전달보다는 기관의 능력 개발, 제도·관리체제 개선 등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리/윤진 기자
mindle@hani.co.kr
“빈곤국 원조는 지속가능한 발전 필수요소”
리처드 매닝 OECD 개발원조위원장
“베트남이나 터키의 조류독감이 지구를 돌아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또 가난한 나라 국민들이 인근 부자 나라로 불법적으로 국경을 넘어 세계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빈곤 퇴치를 위한 공적개발원조(ODA)가 필요하다. 그 혜택은 우리 모두에게 돌아온다.”
지난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만난 리처드 매닝(62) 경제협력개발기구 개발원조위원회(DAC·다크) 위원장은 빈곤국 원조는 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해 필수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원조를 받던 수혜국 위치에서 짧은 시간 안에 지원국으로 탈바꿈한 경험이 다른 개도국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며 “그 나라에 맞는 원조 방법을 찾아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계적으로 대외원조 금액을 늘리고 있는 추세인데?
=2010년에는 국제 대외원조 규모가 2004년에 견줘 60% 가량 늘어난다. 당장 올해부터 지원국들은 각자 약속한 액수만큼 늘어난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지원국들이 집행에 앞서 먼저 자국 의회를 통과해야 하므로, 이가운데 얼마나 실행될지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국내 복지에 쓸 예산을 대외원조로 쓰는 것을 두고 원조제공국 내부 반발은 없나?
=어떤 종류의 원조 프로그램을 운영하느냐가 중요하다. 무엇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수혜국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국민들도 수긍할 것이다. 한국은 대외원조에 많이 참여하고 있지만, 경제규모를 고려하면 비율은 그리 크지 않다. 복지 예산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다크가 비조건부 원조 중심의 정책을 펴고 있다. 그 이유는?
=영국에서 1970년대 이와 관련한 많은 논의들이 있었다. 예컨대 한 빈곤국이 4륜구동 트럭을 필요로 할 때, 그들이 값싸고 성능 좋은 한국산을 사고 싶어도 영국이 더 비싼 영국산 트럭을 제공한다면 이것이 효율적인가?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췄다면 오히려 비조건부 원조를 선호할 것이다. 다른 나라의 입찰에 응해 계약을 따낼 수도 있다. 다크는 적어도 최빈국의 경우 모든 원조는 비조건부로 제공해야 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는 “한국이 원조를 받았던 경험도 있고,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영향력 있는 시민단체들도 있다”며 이런 점들을 잘 활용해 한국만의 원조 방식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은 매달 열리는 다크 회의에 옵저버 자격으로 참가하고 있다.
파리/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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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개발원조위원회는
대외원조 모범 선진국 모임…한국은 미가입
한국이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뒤, 20여개 산하 전문위원회 가운데 유일하게 가입하지 못한 곳이 바로 개발원조위원회(DAC·다크)다.
다크는 ‘저개발국들이 세계 경제에 한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전세계 빈곤 극복을 돕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기구다. 대외원조 역량을 지닌 나라들이 참여하는 곳이라, 선진국 중 선진국들의 모임으로 여겨진다. 현재 회원은 서유럽과 북유럽, 남유럽 국가들, 미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등 22개 나라와 유럽연합 등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우리나라, 멕시코, 헝가리, 터키, 체코, 폴란드, 슬로바키아, 아이슬란드 등 8개국은 아직 가입하지 못했다.
다크에 가입하려면 국민총소득 대비 공적개발원조 비율이 0.2%를 넘거나 원조규모가 1억달러를 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대외 원조규모가 4억달러를 넘어 이 기준은 만족한다.
한국이 다크에 가입할 수 없는 이유는 원조 방식 때문이다. 다크는 원조 사업자를 선정할 때 국제경쟁입찰을 권장하는데, 이는 우리의 ‘국산품 우선 규정’과 배치된다.
윤진 기자 mind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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