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시장국 대출 꺼려 이자수입 ‘뚝’
브라질등 조기상환도 타격… 재정 개선책 마련 ‘진땀’
국제통화기금(IMF)이 ‘딜레마’에 빠졌다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27일 보도했다. 재정여건이 나빠지고 ‘말발’도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외환위기에 처한 나라들에 초긴축 처방을 강요하며 지구촌 사회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러온 국제통화기금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국제통화기금의 딜레마는 최근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차관 조기 상환 발표를 계기로 가속화됐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국제통화기금 차관 155억달러와 98억달러를 애초 일정을 2년 앞당겨 올해 말까지 모두 갚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국제통화기금이 상환받을 차관은 400억달러 정도로 줄어든다. 게다가 신규 대출은 지난 회계연도 기준으로 25억달러에 그쳐 1970년대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차관 대출에 따른 이자수입의 대폭 감소로 이어져 국제통화기금한테는 적신호다. 국제통화기금은 현재 이자를 받아 운영경비(올해 약 10억달러)를 대고 적립금을 쌓고 있다.
이런 현실이 단기간에 바뀌기는 어렵다. 신흥시장 국가들의 경제성적표가 대체로 양호한데다 이들이 저금리 추세로 국제금융시장에서 돈 빌리기도 쉽기 때문이다. 특히 97년 심각한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지금 많은 외환보유고를 자랑하고 있다. 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리지 않는 한 국제통화기금에 갖은 모욕을 받아가며 구제금융을 요청할 나라가 많지 않은 것이다. 국제통화기금은 그동안 긴급대출을 해주면서 재정긴축·초고금리 정책과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을 받아들이라고 압박해 비판을 받아왔다. 네스토르 키르츠너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국제통화기금이 아르헨티나의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고 비난한 것은 이를 뭉뚱그려 말해준다.
이에 따라 국제통화기금은 재정수지를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이 필요한지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했다. 장기 국채 투자 비중을 늘리고 일부 서비스(보고서 제공 등)에 수수료를 물리는 한편, 보유 중인 금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대형 금융위기가 빚어져야만 국제통화기금의 재정난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씁쓸한 진단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상황이 그리 녹록치는 않은 듯하다.
국제통화기금의 실제 영향력도 꽤나 위축됐다. 세계경제의 불안요소를 줄이기 위해 미국에 내수 증대를 억제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나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 유럽연합과 일본도 마찬가지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국가들도 환율절상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 제2차대전 직후 세계경제 차원에서 국제수지 불균형과 환율불안 등을 해소하기 위해 세워진 국제통화기금으로서는 정작 필요한 때에 제구실을 못하고 있는 셈이다. 국제통화기금이 어떤 변신을 통해 이런 딜레마를 극복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경 선임기자, 외신종합 k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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