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의안 투표 주시하는 북 대표들 최명남(왼쪽 둘째) 북한 외무성 부국장이 18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제3위원회에서 북한 인권 상황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를 권고하는 결의안 투표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제3위원회 통과…북 “추가 핵실험” 언급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라고 권고하는 내용의 북한 인권 결의안이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제3위원회(인권 담당)에서 18일(현지시각) 큰 표 차이로 통과됐다. 북한이 이번 결의안 통과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어, 한반도 정세 전반을 경색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제3위원회는 유럽연합(EU)과 일본이 대표로 제안한 이 결의안을 찬성 111표, 반대 19표, 기권 55표로 통과시켰다. 제3위원회는 유엔총회 전 회원국이 참가해 인권·사회 문제를 다루는 분과위원회로, 여기서 통과된 안은 새달 열리는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거의 그대로 통과된다.
이 결의안은 처음으로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고, 북한 인권 침해에 가장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선별적 제재 조처를 취하도록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권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엔총회가 특정 국가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를 안보리에 권고하는 것은 유엔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은 이 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이 결의안이 유엔총회를 통과하더라도 법적 구속력은 없다.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권한은 안보리에 있기 때문이다. 유엔 소식통은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18일 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한 만큼 안보리 통과는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결의안이 큰 표 차이로 통과된 만큼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이미지 타격을 입게 됐다.
이날 회의는 초반에 쿠바가 결의안 수정을 제안하면서 긴장감이 감돌았다.
‘북 인권’ 국제사회 압박 가속화
쿠바 대표는 “특정 국가의 인권 문제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라는 조항은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공격이며 유엔 메커니즘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이라며 이 조항의 삭제를 주장했다. 중국과 러시아 대표도 유엔이 회원국 내부 문제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며 이 수정안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쿠바 수정안은 찬성 40표, 반대 77표, 기권 50표로 부결됐다.
북한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최명남 북한 외무성 부국장은 이날 원안 표결을 앞두고 발언권을 신청해 “유럽연합과 일본이 제안한 결의안이 근거를 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COI) 보고서는 일부 탈북자들의 조작된 증언들을 모아 만든 것”이라며 “결의안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의한 것으로 앞으로 예기치 않은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북한 국가·사회 시스템을 제거하려는 이런 인권 캠페인이 우리로 하여금 추가 핵실험을 자제하지 못하도록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북한 인권 결의안은 2005년부터 매년 연말 유엔총회에서 채택됐으나 국제사회의 큰 관심을 끌지는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조항이 들어가고, 여기에 북한이 적극적인 저지 활동을 펼치면서 큰 관심사로 떠올랐다.
북한 인권 상황의 국제형사재판소 회부 조항은 올해 초 유엔 북한인권조사위가 발표한 북한 인권 보고서에 처음 등장했다. 지난해 3월 발족한 조사위는 약 9개월간 주로 탈북자 등의 증언을 토대로 한 조사를 통해 북한의 인권 침해가 북한 당국의 정책에 기반한 반인도 범죄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사위는 반인도 범죄는 국제형사재판소가 규정하는 4대 중대 범죄에 해당하므로 안보리가 이를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조사위의 활동은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 실태에 대한 우려가 반영된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미국의 입김도 적잖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은 대북한 압박의 일환으로 인권 문제를 2000년대 중반부터 줄곧 제기해왔다. 미 의회는 2004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해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민간단체를 지원하고 국무부에 북한인권특사 자리를 신설했다. 워싱턴 싱크탱크의 한 소식통은 “북한인권조사위의 설립과 활동에는 유럽연합과 함께 미국도 깊게 관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미국은 북한이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과 달리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 것을 주목하고 있다. 이번 결의안 통과로 북한이 국제사회의 압박을 의식해 인권 개선에 나서리라는 기대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오히려 한반도 정세가 악화하면서 북한 내 인권 개선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워싱턴 소식통은 “미국이 대화를 외면한 채 인권 문제로 압박을 강화하면 북한이 여기에 반발하면서 역효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결의안이 불법 구금·고문, 성분제에 의한 차별, 표현의 자유 등 자유권적 차원의 인권을 강조하는 반면에, 인권 실현의 주요 요소로 여겨지는 평화권·개발권 등을 경시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남북 분단으로 인한 안보 불안과 미국 주도의 오랜 경제제재 조처가 북한 국민들의 인권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18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유엔총회 제3위원회 회의에서 최명남 북한 외무성 부국장이 발언하는 모습이 회의장 앞 대형 스크린에 비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선 북한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라고 권고하는 내용의 북한 인권 결의안이 큰 표 차이로 통과됐다. 뉴욕/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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