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총회 이후] 숨가빴던 ‘막후 24시’
오바마도 원자바오 얼굴 보기 힘들어
오바마도 원자바오 얼굴 보기 힘들어
코펜하겐에서 열린 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는 지구촌에 새로운 세력균형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줬다. 미국과 중국 두 나라를 일컫는 ‘G2’의 시대란 말이 나온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중국은 국제무대 막후에서 자신의 힘을 주도적으로 행사했다. 이번 회의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정치적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후한 점수를 받지 못한 채 끝났다.
진통을 거듭하던 열이틀간의 총회가 협상 시한을 하루 넘겨 합의안을 도출하기까지 모든 과정은 미국과 줄다리기를 거듭하면서 협상장을 좌지우지한 중국의 존재를 빼놓곤 설명하기 어렵다.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90%를 차지하는 30개 나라의 긴급 모임이 아무런 성과 없이 흐지부지된 18일(현지시각). 총회 마지막날인 이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코펜하겐 도착으로 극적인 협상 타결이 이뤄질 것이란 기대감이 조성됐다. 하지만 오바마조차 열쇠를 쥔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대면하기가 쉽지 않았다. 원자바오는 오바마를 비롯한 소수그룹의 정상회의 석상에조차 허야페이 외교부 부부장이나 위칭타이 기후변화협상 특별대표를 내보냈다. 화가 난 오바마는 중국 쪽에 “원자바오와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전했다.
협상 시한이 6시간도 남지 않은 저녁이 돼서야 오바마는 원자바오를 비롯해 주요 개발도상국을 대표하는 브라질,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들과 만날 수 있었다. 이 5자회동에서 ‘코펜하겐 협정’의 초안이 만들어졌다.
협정 초안에 몇몇 나라들이 반대하면서 밤샘회의가 이어졌으나, 회의 주최국인 덴마크의 라스무센 총리가 19일 오전 7시 정회를 선포했다. 이날 폐막한 총회는 코펜하겐 협정 초안을 거의 수정하지 않은 채 채택했다.
중국 쪽 수석대표인 셰전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은 “회의는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냈다. 모두 기뻐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개도국 지원과 개도국의 자발적 탄소배출 감축 약속에 대한 검증 등에서 중국 쪽 의견이 많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데페아> 통신은 “세계는 20년간 미국의 유일 초강대국 시대를 지나 ‘G2’ 중심으로 재편된 게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진전은 충분치 않다.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말했다.
<가디언>과 <뉴욕 타임스> 등 선진국의 주요 언론들은 대체로 정치적 합의에 머문 이번 회의가 ‘실패했다’는 쪽에 무게를 둬 보도했다. 지구온난화로 큰 피해가 예상되는 아프리카와 태평양 연안의 섬나라들과 비정부기구들은 교토의정서를 잇는 구속력 있는 합의 도출에 실패한 이번 회의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존 소벤 영국 그린피스 대표는 “코펜하겐은 범죄의 현장이었다”고 분개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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