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북·미 변화 없인 해결책 없다”
28일 끝난 아세안지역포럼(ARF)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미 관계의 불신을 재확인한 자리였다며, 앞으로 상당 기간 냉각기와 압박국면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먼저 회담 결과에 대해, 김기정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아세안지역포럼을 통해 미사일 사태의 해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크게 기대도 하지 않았고, 예상했던 수준으로 넘어갔다”며 “(그러나) 유엔 안보리 결의 이후 북한이 처음으로 참가한 국제회의여서 혹시나 태도의 변화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무런 결과 없이 끝났다”고 아쉬워했다. 김연철 고려대 연구교수도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평양에 들어가 북한을 설득했으나 실패했고, 아세안지역포럼에 백남순 북한 외무상이 참석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며 “당분간 외교적 성과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는 국면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북한이 왜 굳이 아세안지역포럼에 나왔는지에 대해, 고유환 동국대 교수(북한학과)는 “아세안지역포럼은 원래 중립적인 기구로 그나마 북한이 늘 참여해왔다”며 “북한 입장에서는 공평하게 자기네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장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압력으로 활용되는 공간이 된 것을 보고 ‘자기네들끼리 잘해봐라’라고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아세안지역포럼에서 외교적 돌파구를 찾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 소재와 관련해서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다소 엇갈렸다. 김연철 교수는 “북한이 과거의 게임 규칙에 입각해 게임을 하는 것 같다”며, 북한의 태도에 1차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정책 구도가 클린턴 행정부 시절과 많이 달라져, 한국이나 중국이 중재할 수 있는 여지들이 많이 줄어들었다”며 “그런 게임의 환경이나 규칙이 달라졌다는 점을 북한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협상 국면을 조성하려는 한국이나 중국의 외교적 노력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최소한 북한이 6자회담에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비해 고유환 교수는 “북한에게 굴복은 죽음과 같은 것이기 때문에 조그마한 명분이라도 없으면 나오지 못한다”며 “지금은 부시 행정부가 명분을 줄 의향이 없고, 미국이 쳐놓은 덫에 북한이 걸려들었기 때문에, 미국이 오히려 힘을 얻는 양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미국이 움직이지 않으면 뾰족한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전망에 대해선 대체로 부정적이다. 김기정 교수는 “미국과 일본은 유엔 결의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국면으로 전환할 가능성이 많다”며 “미사일 문제를 두고 국제사회와 북한의 대립구도를 당분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연철 교수도 “당분간 중재의 모멘텀이 마련되기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북한이 계속 6자회담을 거부하면 교착의 원인에 대한 모든 책임을 북한이 뒤집어 쓸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유엔 결의 이후 북미 관계가 아니라 북한과 국제사회라는 관계로 게임의 규칙이 바뀌어, 북한이 상당히 불리해졌다”며, 제재 국면 쪽으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유환 교수는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대외적 한계를 절감하고 돌아감으로써 북한 군부도 국제사회 현실을 깨닫게 되는 일종의 학습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다소 기대를 표시했다. 그는 “일단 북한이 또다른 무리수를 두기보다는 장기적으로 관망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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