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첫 의장국…‘비공식적 유엔안보리’로 변화
중국 ‘개도국 맹주’ 구실
“주요국 정상회의가 부자 나라들의 클럽 구실을 하던 시절은 지났다.”
러시아가 처음으로 의장국을 맡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15∼17일 개최한 주요8개국(G8) 정상회의를 지켜본 외교 소식통들의 평가다. 지난 1998년 러시아의 가입으로 동질성이 약화하기 시작한 G8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결정적인 변화를 겪게 됐다.
무엇보다 초강대국 미국을 좇아 선진공업국들이 한목소리를 내면서 ‘박수부대’ 구실을 하는 양상이었던 기존 주요국 정상회의의 이미지는 상당부분 탈색됐다. 이번 회의에서 러시아는 북한 미사일 발사 문제와 관련해 미국·일본 등과 팽팽히 맞섰다. 에너지 안보 문제를 둘러싸고는 유럽 나라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러시아는 초청대상국인 중국·인도와 처음 정상회담을 가져, 기존 G7 나라들을 견제하기도 했다. 러시아 일간지 <코메르산트>는 17일 “러시아는 G7의 대항축을 구축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G8의 성격이 공통 의견을 가진 나라들의 클럽이 아니라, 주요국 정상들이 솔직하게 의견을 교환하는 비공식적 유엔 안보리와 같은 모임으로 바뀌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을 둘러싼 미국과 유럽 나라들의 갈등도 노출됐다. <아사히신문>은 18일 “러시아 가입 이전의 G7은 미국에겐 동조하는 나라들을 결집해 문제에 대응하는 장으로 기능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미국 외교안보전문가들 사이에선 주요국 정상회의가 클럽조차도 되지 못한다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G8이 중국과 인도 등 ‘덩치 큰’ 개도국들을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세계 경제의 주요 현안에 대처하기 어렵게 된 사정도 G8의 성격 변화를 재촉한다. 특히 G8의 ‘단골 초청손님’인 중국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개도국 6개국 정상회의’를 주도하는 등 개도국 맹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G8이라는 틀의 타당성에 대한 문제제기도 커지고 있다. 경제규모에 비춰, G8 멤버인 러시아·이탈리아·캐나다가 중국·인도·브라질보다 우대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을 추가시킨 G9나, 남아공까지 포함한 G13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등 질적 변화가 더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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