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윤번제 타당성 논의 제안
미국이 자국의 ‘입맛’에 맞는 유엔 사무총장을 뽑기 위해 선출방식 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올해 말 임기가 만료되는 코피 아난 사무총장의 후임 인선과 관련해, 사무총장 적임자의 자격과 지역 윤번제의 타당성에 대해 논의할 것을 안보리 이사국들에 제안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8일 유엔 소식통의 말을 따 보도했다. 이번달 안보리의 순번제 의장을 맡은 존 볼턴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이달 초 안보리 의사일정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사무총장 인사 문제를 의제로 올리자며 이런 제안을 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다른 이사국들이 “시기상조” “안보리 의제에 걸맞지 않다”는 등의 반론을 펴 2월 의제로는 채택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미국은 이사국들과의 개별 회담을 통해 이 문제를 계속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유엔 헌장은 “사무총장은 안보리의 권고를 바탕으로 총회가 임명한다”고만 규정했을 뿐 특별한 절차를 두고 있지는 않다. 지금까지는 상임이사국들이 물밑조정을 통해 후보자를 뽑는 게 관례였고,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선출해왔다. 이에 대해 미국이 적임자의 자격을 먼저 정해야 한다며 이의를 제기한 것은 후임 인사에서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볼턴 대사는 그동안 “사무총장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거대한 관료조직의 운영 능력”이라고 주장해왔다. 이라크 침공을 둘러싸고 아난 총장과 대립한 경험을 고려해 유엔이 미국의 대외정책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정치색이 엷은 대신 실무능력이 뛰어난 인사를 뽑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런 미국의 구상과 달리 대다수 회원국들은 지역 윤번제를 존중해 차기 총장은 아시아에서 뽑아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 하고 있다. 또 안보리가 밀실에서 뽑는 게 아니라 총회에서 폭넓게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캐나다는 이런 의견을 집약해 최근 사무총장 후보에 대한 총회의 공청회 실시 등 다수 회원국들이 관여하는 방안에 대해 관계국들과 협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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