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서부 리비프에 있는 의료기관에서 지난달 24일 고령자가 인도에서 생산된 아스트라제네카-옥스퍼드대 개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리비프/로이터 연합뉴스
영국 총리실의 에드워드 리스터 최고보좌관이 지난달 22일 인도를 급거 방문했다. 인도 외무부는 리스터 보좌관이 하르시 바르단 슈링글라 인도 외무부 차관과 “양자 관계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달 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인도 방문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공식 발표만 보면 양국 정상회담을 앞둔 사전 준비 성격 정도로 보인다.
이런 공식적 발표와 달리 <파이낸셜 타임스> 등 영국 언론은 존슨 총리가 영국 내 백신 부족 가능성 우려 때문에 인도에 백신 수출을 설득하기 위해 측근인 리스터 보좌관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영국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주도적으로 개발한 나라이며 백신 보유량도 비교적 많지만, 7월 말까지 18살 이상 국민 모두에게 1차 접종을 마친다는 계획을 실현하려면 인도에서 수입하는 백신도 뒷받침돼야 한다. 세계 최대 코로나19 백신 생산업체이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라이선스 생산하고 있는 사기업인 ‘인도 혈청연구소’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1000만회분을 영국에 수출하기로 했다. 약속했던 물량 절반을 공급한 뒤 물량 공급이 늦어지자, 영국에서는 백신 부족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영국의 우려는 현실이 되어가는 모양새다. 인도가 자국 감염 확산으로 코로나19 백신 수출을 전면 중단한다는 보도가 지난달 말 나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달 25일 “(국제 백신 공동구매·배포 조직인) 코백스에 참가 중인 저소득 국가는 인도 혈청연구소에서 생산하는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3월과 4월 지연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인도 보건부 대변인은 2일 “백신 수출 금지 조처를 취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최소한 일정 지연과 규모 대폭 축소는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 매체 <액시오스>는 최근 인도 정부 당국자 말을 인용해 “수출 중단은 없지만 국내 공급 문제 때문에 (수출) 일정 재조정은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전세계 코로나19 백신 생산량은 중국이 33%, 미국 27%, 유럽연합 19%, 인도 13% 순이다. 하지만 미국은 자국 내 백신 접종을 우선해 사실상 수출을 하지 않고 있다. 인도는 코로나 백신 약 6440만회분을 수출 및 대외 무상제공했다. 1820만회분은 코백스 프로그램을 통해 수출하고, 1040만회분은 저소득 국가에 무상제공했다. 3570만회분은 영국과 캐나다 같은 부유한 나라도 포함한 여러 국가에 상업적으로 수출했다. 인도 혈청연구소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뿐 아니라 노바백스 생산도 계획하고 있다. 인도 비르초 그룹은 러시아 스푸트니크 브이(V) 백신을 한 해 2억회분 생산하기 위해 러시아직접투자펀드와 협약을 맺었다. 인도 바라트 바이오테크는 ‘코백신’이라는 코로나19 백신을 자체 개발했고,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코백신을 맞았다. <액시오스>에 따르면 중국은 생산량의 60%를, 인도는 이보다 많은 65%를 수출한다.
인도 코로나19 백신 생산과 수출에 세계가 흔들리는 배경에는 탄탄한 제약산업이 있다. 인도는 전세계 복제약 생산의 20%와 코로나19 백신을 포함한 세계 전체 백신 60%가량을 생산해, “세계의 약국”이라 불린다. 인도 제약산업의 세계적 발달은 1970년 특허법 제정을 계기로 본격화됐다. 인도는 물질 자체에 특허를 주는 물질 특허를 인정하지 않고 공정 특허만 인정했다. 제조 공정을 다르게 해 특허를 피해 가는 방법을 열어, 자국 업체가 복제약품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게 했다. 정부가 의약품 가격을 통제해 1970년 이전까지 인도 제약산업 80% 이상을 지배한 다국적 제약사가 인도 시장에서 사실상 철수하게 만들었다. 인도는 2005년 물질 특허를 인정했지만 ‘에버그리닝 전략’(의약용 신규 화합물에 대한 물질특허를 등록한 후, 이 화합물을 개량해 특허를 연장하는 것) 사용은 인정하지 않는 등 여전히 특허 인정에 엄격한 편이다.
인도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전세계 백신 수요가 치솟자, 이를 외교 전략으로도 적극 활용했다. 인도 정부는 올해 1월부터 ‘백신 마이트리’(백신 우정)라는 이름으로 주변국인 방글라데시, 미얀마, 네팔뿐 아니라 르완다같이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국가들에도 인도산 백신을 제공했다. 샤시 타루르 전 인도 외무장관은 최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에서 인도의 백신 외교가 “순전히 이타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중국과의 경쟁이라는 무언의 하위 텍스트가 있다”고 시인했다. 미국과 일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의 4자 협의체인 ‘쿼드’의 지난달 12일 첫 정상회의에서는 미국·일본·오스트레일리아가 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 낮은 이자로 대출을 해주고 그 돈으로 각국이 인도산 백신을 사도록 하는 방안이 협의됐다. 인도산 백신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다.
그러나 인도 백신 외교가 성공할지 예측하기는 이르다. 인도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16만명 이상으로 미국과 브라질 다음이다. 4일에는 6개월여 만에 최고치인 하루 9만명 이상 신규 확진자가 나오며 감염이 급속히 재확산되고 있다. 인도 보건부에 따르면 현재 6500만명가량이 1회차 백신 접종을 마쳤다. 인구 13억명 중 우선접종 대상자인 3억명에 대해서는 8월까지는 2회차 접종까지 마친다는 계획이지만 현재 속도대로라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인도 백신산업의 구조적 약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인도는 백신을 포함한 의약품은 원료 수입 의존도가 높다. 특히 세계 원료의약품(API) 20%가량을 생산하는 중국 의존도가 높아서, 2019년 4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인도 전체 원료 의약품 수입의 67%를 중국산이 차지했다. 중국이 1990년대부터 원료 의약품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통해 가격 경쟁력을 키우자, 인도 제약업체들이 완성품 생산 위주로 방향을 틀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백신 제조에 꼭 필요한 장비가 미국의 수출 통제로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도 혈청연구소 최고경영자(CEO) 아다르 푸나왈라는 미국이 백신 제조에 필요한 필터 등의 수출을 막고 있어 노바백스 생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최근 “전세계 (코로나19) 백신 생산에 관해 말하자면, 이런 주요 원료 물질 공유(가 안 되는 것)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말했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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