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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자동차 대신 호흡기, 술 대신 소독제…코로나에 생산라인이 바뀐다

등록 2020-03-24 17:09수정 2020-03-25 02:44

페라리·GM·포드·테슬라 등 글로벌 자동차업체
정부 주문에 의료용 인공호흡기 생산 착수
독 자동차협회 “의료기기 안전·위생 기준 준수”
프라다, 가운 8만벌-마스크 11만장 공급키로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의 한 병원의 집중치료실에서 간호사가 코로나19 환자를 돌보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의 한 병원의 집중치료실에서 간호사가 코로나19 환자를 돌보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첨단 자동차 제조업체가 생산 라인을 인공호흡기 제조시설로 개조한다. 주류업체와 스킨케어 업체는 술과 핸드크림 대신 손 소독제를 만든다. 전자업체와 패션업체도 수술용 마스크를 생산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가 만들어낸 진풍경이다.

24일 오후(한국시각) 전 세계 감염자가 38만명을 넘어설 만큼 폭증하면서 의료장비 공급이 수요에 턱없이 못 미치자, 일상 생활용품과 소비재 기업들이 각국 정부의 긴급 요청에 호응해 의료장비 생산에 나서고 있다.

23일(현지시각) 독일 자동차제조업협회(VDA)가 의료장비 제조와 공급을 회원사들이 지원하기로 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협회는 업체들에게 의료기기 산업안전 및 위생 기준을 맞출 필요가 있다는 주의도 함께 내놨다. 힐데가르트 뮐러 협회장은 성명에서 “우리는 (연방정부의) 요청에 대해 회원사들과 긴밀하게 접촉하면서 필요한 장비의 공급이 가능하도록 추진하고 있다”며 “지금 같은 예외적인 상황에서 독일 자동차 산업의 최우선 순위는 사람들의 안전과 보호”라고 밝혔다. 베엠베(BMW), 폴크스바겐 등 독일 굴지의 자동차 제조사들도 3D 프린터를 이용해 병원용 인공호흡기와 안면 마스크를 생산,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확산 사태가 가장 심각한 이탈리아에서는 고급차 제조사인 페라리와 이탈리아-미국 합작 자동차 업체 피아트 크라이슬러가 인공호흡기 생산에 동참하기로 했다. 피아트 크라이슬러의 마이크 맨리 최고경영자는 최근 임직원들에게 보낸 업무서한에서 “23일부터 우리 공장들 중 한 곳을 마스크 생산 시설로 개조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데페아>(dpa) 통신이 전했다. 그는 “향후 몇 주 안에 마스크 생산을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한 달에 100만개 이상을 만들어 최우선 수요자들과 보건의료 인력에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아트 크라이슬러는 코로나19 사태로 현재 유럽과 북미 공장의 가동을 멈췄으며, 마스크 생산을 위해 아시아 지역의 한 공장 설비를 개조할 예정이다.

이탈리아 패션업체 프라다도 본부가 있는 중서부 토스카나주 정부의 주문을 받아 의료용 가운 8만벌과 마스크 11만장을 다음달 6일까지 생산, 공급하기로 했다고 현지 <안사>(ANSA) 통신이 전했다. 디스플레이 생산이 주력인 일본 전자업체 샤프는 이달 초부터 텔레비전 생산 라인에서 의료진을 위한 수술용 마스크를 생산하고 있다.

지난 19일 미국 미시간주 오리온 타운십에 있는 제너럴 모터스 공장의 조립 라인. 세계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이 최근 코로나19 급속 확산으로 의료장비 수요가 급증하자 생산 시설 일부를 개조해 인공호흡기 제조·공급에 나서고 있다. 오리온 타운십/AP 연합뉴스
지난 19일 미국 미시간주 오리온 타운십에 있는 제너럴 모터스 공장의 조립 라인. 세계 주요 자동차 제조사들이 최근 코로나19 급속 확산으로 의료장비 수요가 급증하자 생산 시설 일부를 개조해 인공호흡기 제조·공급에 나서고 있다. 오리온 타운십/AP 연합뉴스

최근 며칠 새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중국, 이탈리아에 이어 누적 확진자 수 3위(23일 4만6438명)가 된 미국도 의료장비 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전기차와 우주선을 만드는 첨단 기술업체인 테슬라도 인공호흡기 제작에 나섰다. 지난 22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포드와 제너럴 모터스(GM), 테슬라가 인공호흡기와 다른 금속 제품(의료기기)들을 빨리 만들기 위한 승인을 받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지난주 영국에선 세계적 자동차경주대회인 포뮬러 원(F1) 참가 업체들이 “의료장비 공급 증대를 지원하기 위해 며칠 안에 구체적인 방법을 찾겠다”고 밝혔다고 <비비시>(BBC) 방송이 전했다. 포뮬러 원 쪽은 자신들이 필요한 의료 장비 공급을 위한 설계, 기술,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슈퍼카 제조사 맥라렌과 항공우주산업체 메깃, 일본 자동차업체 닛산 등이 조만간 의료용 인공호흡기를 생산할 계획이다. 또 인도의 자동차업체 마힌드라도 자사 누리집에 공표한 성명에서 인공호흡기를 생산하는 방법을 즉각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자동차 제조업체 같은 거대 장치 산업이 인공호흡기 등 고급 의료장비 생산에 집중하는 반면, 생활 소비재 업체들은 소독제 쪽에 특화하고 있다. 버뮤다에 본보를 둔 세계 최대 럼주 제조사 바카디는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생산시설을 손소독제 제조 원료인 에탄올 생산 설비로 바꿨다. 미국 양조업체 에이트 오크스 팜도 알코올을 이용한 소독제를 생산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또 니베아 크림을 만드는 독일의 스킨 케어 업체 바이어스도르프와 프랑스 화장품업체 로레알도 각각 의료용 소독 젤을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업들이 주력 상품이 아닌 제품, 그것도 의료용품 생산을 위해 설비를 개조하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가는 데다 세밀한 주의가 요구된다. 산업공급망 전문가인 미국 노터데임대의 케이틀린 워왜크 교수는 21일 <뉴욕 타임스>에 “공장의 용도를 변경할 때에는 생산라인에서 만들어진 새 제품이 기존 제품과 얼마나 가까운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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