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최고경영자(CEO)가 자사가 개발한 첫 스마트폰 ‘퍼스트폰’을 공개하고 있는 모습. 베이조스는 2018년 8월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계정으로 발신된 왓츠앱 메시지를 휴대폰으로 열어봤다가 해킹당했다. 시애틀/AFP 연합뉴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최고경영자(CEO)의 휴대전화 해킹에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개입했다는 의혹에 대해 유엔이 “그럴 가능성을 시사하는 정보가 있다”며 진상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실의 아녜스 칼라마르 사법외 살인 특별보고관과 데이비드 케이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은 22일 성명을 내어, “베이조스 회장의 휴대폰 해킹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미국 일간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를 침묵시키거나 최소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 수행됐다고 믿는다”며 “유엔과 관련 국가들이 즉각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워싱턴 포스트>는 2018년 10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비판적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가 터키 주재 자국 영사관에서 끔찍하게 살해된 사건의 배후에 빈 살만 왕세자가 있다는 의혹을 비롯해 사우디 왕실의 행태를 비판적 시각으로 보도해왔다. 베이조스 회장은 2013년 경영난에 빠진 이 신문을 인수한 소유주다. 사우디 왕실로선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 심기가 몹시 불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이날 영국 일간 <가디언>은 “베이조스 회장이 2018년 5월 본인의 아이폰을 통해 모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휴대폰 번호로 발신된 왓츠앱 동영상 메시지를 받은 뒤 해킹을 당했다”고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최초로 보도했다. 베이조스와 빈 살만 왕세자는 평소 왓츠앱을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을 정도로 친분이 있었으며, 암호화된 형태로 발송된 문제의 메시지가 베이조스의 휴대폰에 악성파일을 심은 지 몇 시간 만에 ‘세계 최고 거부’의 휴대폰에서 다량의 정보가 빠져나갔다는 것이다.
2016년 11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 최고경영자(왼쪽)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두 사람은 평소 휴대폰 메시지를 주고받을 만큼 친분이 있었다. 리야드/AFP 연합뉴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날 “유엔 보고관들의 판단과 조사 촉구는 미국 워싱턴 소재 컨설팅업체인 에프티아이(FTI) 컨설팅이 베이조스 회장의 휴대폰을 감식한 17쪽짜리 보고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며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이 사건의 조사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미 연방수사국은 이 보도에 대한 언급을 거부했다. 에프티아이 컨설팅은 디지털 감식 보고서에서, 빈 살만 왕세자 명의의 왓츠앱 계정에서 악성코드가 심어진 동영상 파일이 발송된 직후 베이조스의 아이폰에서 데이터가 새어나갔을 가능성에 대해 "중간에서 높은 정도의 확신이 있다"고 밝혔다.
사우디 왕실은 이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파이살 빈 파르한 사우디 외교장관은 이날 “빈 살만 왕세자가 베이조스의 휴대폰을 해킹했다는 건 완전히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미국 주재 사우디 대사관도 트윗 메시지를 통해 “모든 사실을 알 수 있도록 이런 주장에 대한 수사를 요청한다"고 반박했다.
베이조스의 휴대폰에 심어진 악성파일 ‘페가수스-3’을 개발한 이스라엘 업체 엔에스오(NSO)도 도마에 올랐다. 이스라엘 인권 변호사 에이테이 맥은 이달 초 이스라엘 국방부를 상대로 이 업체의 스파이웨어 수출 허가를 취소하라는 소송을 국제앰네스티와 공동으로 제기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23일 보도했다.
공교롭게도, 베이조스의 휴대폰이 해킹당한 이후인 지난해 1월 미국의 타블로이드 매체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베이조스가 미국의 유명 방송인이자 뉴스 앵커인 로런 산체스와 불륜을 저질렀다”며 둘 사이에 오갔던 휴대폰 메시지들을 단독 보도했다. 이후 베이조스는 첫 부인 맥켄지와의 25년 결혼 생활을 접고 막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며 이혼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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