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미국이 지난해 5월 이란 핵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이후 중동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이 25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이 열리고 있는 프랑스 비아리츠를 ‘깜짝’ 방문했다. 핵합의 유지를 위한 중재자를 자처해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기획 초청’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최대의 압박’을 강조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끝내 설득하는 데 실패해 교착상태에 빠진 미국과 이란 간 대화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기획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자리프 장관이 이날 비아리츠에 도착해 마크롱 대통령과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을 만났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5시간여의 비아리츠 체류 시간 동안 프랑스 정부는 물론 영국·독일 쪽에도 핵합의 유지 노력과 관련한 자국의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과 자리프 장관은 이날 회동에서 미국의 이란에 대한 원유 수출 제재 완화를 포함해 이란의 핵합의 준수를 전제조건으로 한 경제적 보상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은 핵합의 유지 조건으로 하루 최소 70만배럴, 최대 150만배럴의 원유 수출 허가를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의 깜짝 방문으로 일각에서 제기됐던 미국과 이란의 직접적 대화는 성사되지 않았다.

자리프 장관은 이날 회동 뒤 마크롱 대통령 등과 마주 앉아 대화하는 사진 2장과 함께 “가야 할 길은 어렵지만 노력할 가치가 있다. 건설적 대화를 위한 이란의 적극적 외교는 계속된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프랑스 정부 관계자도 이 자리에서 오간 구체적 내용은 전하지 않은 채 “마크롱 대통령과 자리프 장관 간 논의는 긍정적이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만 밝혔다.

자리프 장관의 깜짝 방문은, 미국의 일방적 이란 핵합의 탈퇴로 갈수록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두 나라 사이에서 중재자를 자처해온 마크롱 대통령의 기획에 따른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개막 직전인 지난 23일에도 자리프 장관을 엘리제궁으로 초청해 대이란 제재 완화 등 경제적 보상책을 제안하고 이란의 핵합의 복귀와 의무사항 준수를 촉구한 바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전날 오찬에 이어 만찬 자리에서도 다른 정상들과 함께 이란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한 유럽국가의 외교 당국자는 만찬장에서 나머지 6개국 정상들이 이란 핵합의 유지를 위해 트럼프를 설득했지만 실패했다고 <로이터> 통신에 전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이견만 노출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이 25일 오전 프랑스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전날 만찬에서 “(G7 정상들이) 합동 메시지를 내고 화해 조처를 이어가는 데 동의했다”고 밝히면서, 이란에 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자신에게 위임했다고 밝힌 데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그 문제를 논의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우리 나름의 아웃리치(접촉 노력)를 할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대화하겠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대화하고 싶어하면 대화하면 된다”며 불쾌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