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의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가 구금돼 있는 런던 벨마시 교도소의 전경. 런던/AFP 연합뉴스
폭로 전문 누리집 ‘위키리크스’의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가 영국에서 체포된 이후, 그의 신병 처리를 놓고 국제 사회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어산지가 ‘정보의 자유’를 상징하는 인물이긴 하지만, 미국과 스웨덴에서 각각 ‘공모’과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 정부 모두 어산지의 신병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여, 적잖은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미국 정부는 11일 어산지가 런던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체포된 직후, 곧장 그에 대한 사전 범죄인 인도 요청서를 영국 정부에 제출하는 등 신병 확보를 위한 법적 절차에 착수했다. 미 법무부는 동시에 컴퓨터 해킹 공모 혐의 등 어산지의 기소 내용을 공개하며 “그가 최대 5년형(간첩죄의 경우 최대 사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12일(현지시각) 위키리크스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의 체포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어산지를 석방하라’고 적은 펼침막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시드니/EPA 연합뉴스
하지만 다음날 스웨덴 검찰이 어산지의 2010년 성폭행 사건에 대한 수사 재개를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상황이 복잡하게 꼬이는 모양새다. 여기에 영국 하원의원 70여명이 “스웨덴 쪽이 어산지의 신병 인도를 원한다면, 그를 (미국이 아닌) 스웨덴으로 보내도록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야 한다”며 편들기에 나섰다.
영국 하원의원 70여명은 사지드 하비드 내무장관에게 보낸 서한에서 “성폭행 피해자들 편에 서라. 위키리크스 설립자에 대한 성폭행 혐의가 적절히 조사받을 수 있도록 하라”고 촉구했다. 서한에 서명한 스티븐 키녹 의원은 13일 <비비시>(BBC) 인터뷰에서 “어산지를 둘러싼 일들이 정치화되고 있다”며 “이 서한은 어산지가 스웨덴에서 성폭행 혐의 등으로 가장 먼저 기소됐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제레미 코빈 노동당 대표는 어산지의 미국 송환에 반대 뜻을 밝혔고, 여당인 보수당도 이 사안이 정치적 이슈로 불거질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어산지는 2010년 10월 미국의 기밀 외교전문 25만건을 공개해 미국 정부에 수배된 직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위키리크스 컨퍼런스를 마친 뒤 2명의 여성을 성희롱·성폭력했다는 혐의로 고소당했다. 스웨덴 검찰은 2017년 관련 수사를 종료했지만, 그가 체포됨에 따라 수사를 재개할지 검토에 들어갔다. 어산지의 성폭력 혐의의 공소시효는 2020년 8월까지다. 어산지의 부친은 “내가 74살이고 그 애가 47살인데 체포 당시 모습을 보니 내가 그애보다 더 나아 보였다. 충격을 받았다”며 아들을 고향인 오스트레일리아로 보내달라고 호소했다.
폭로 전문 누리집 ‘위키리크스’의 창립자인 줄리언 어산지가 11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경찰에 의해 체포된 뒤 호송차 안에서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 있다. 런던/AP 연합뉴스
어산지의 운명을 정하는 것은 영국 법원이다. 어산지는 11일 보석 조건을 어긴 혐의로 3주간의 구금형을 선고 받았다. 영국 법원은 어산지의 미국 송환을 여부를 판단하는 심리를 진행하기 위해 다음달 2일 다시 법원에 출두할 것을 명했다.
영국 내무장관은 어느 쪽 요구가 먼저였는지, 더 중대한 범죄 혐의가 무엇인지 등을 고려해 우선 순위를 정하는 재량권을 지니고 있다. 또, 송환되면 사형이나 고문에 처해질 수 있는 경우 송환을 막을 수 있다. 실제, 미군 전산망을 해킹한 혐의로 미국에서 기소돼 송환이 추진됐던 개리 매키넌은 보수당 연립정부 출범 이후 동정 여론이 확산하며 2012년 송환을 면했다. 당시 영국 내무장관이 테레사 메이 현 총리다.
영국의 송환 전문 법률회사 ‘킹슬리 내플리’의 레베카 니블록 변호사는 <뉴욕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어산지의 변호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투려고 할 만큼, 간단한 싸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최소 1년 반 이상이 되는 긴 싸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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