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옛소련이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체결한 이태 뒤인 1989년 1월, 양쪽의 군축 실사 담당자들이 미국의 퍼싱2 미사일의 해체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러시아의 신형 중거리 미사일 재개발과 미국의 키프로스 주둔군 배치 문제 등을 놓고 양대 군사강국이 날카롭게 맞서면서 긴장이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발레리 게라시모프 합참의장은 5일 군사 “(미국에 의해)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이 파기되면 우리가 아무런 대응 없이 조약을 탈퇴하진 않을 것”이라며 “러시아의 보복 대상은 미국 영토가 아니라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이 배치된 국가들이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고 <모스크바 타임스>가 보도했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우리는 조약 파기에 반대하지만, 그런 일이 생기면 그에 맞춰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현재 미국은 (안보)상황이 너무 변해서 그런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우리의 대답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우리도 그럴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1987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중거리핵전력조약(INF)에 서명하고 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앞서 4일 서방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는 회원국 외교장관 회의 뒤 공식성명을 내어 “우리는 러시아가 중거리핵전력조약을 위반하고 있다는 미국의 발견을 강하게 지지한다”며 “러시아가 ‘9M729’라는 미사일 시스템을 개발해 배치했으며, 이는 유럽 안보에 심각한 위험을 끼치는 것”이라고 밝혔다.
회의에 참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러시아의 행동은 미국과 동맹국들의 국가안보를 중대하게 침해하고 미국이 조약에 구속되는 걸 무의미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오늘 미국은 러시아가 완전하고 검증가능한 조약 준수로 복귀하지 않으면 미국도 60일 안에 조약의 의무를 유보할 것임을 선언한다”며 러시아에 시한부 최후 통첩을 했다. 5일 러시아의 반응은 미국의 경고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다. 1987년 미국과 옛소련이 맺은 중거리핵전력조약은 사거리 500~5000km의 지상 발사 핵미사일의 배치를 금지하고 있다.
양쪽의 갈등은 유럽의 지중해와 극동 러시아 인근 해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5일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키프로스에 군사 기지를 건설하는 계획을 검토 중이라는 정보를 다양한 소식통들로부터 입수하고 있다. 그 목적은 이 지역에서 러시아의 커진 영향력에 맞서려는 것”이라고 미국을 비난했다. 그는 “미국과 나토가 지중해 동부에서 벌이는 계획에 키프로스가 말려들고 있다. 이는 불가피하게 키프로스에 위험하고 불안정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키프로스에도 경고장을 날렸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이에 대한 미국의 즉각적인 반응은 나오지 않았으나, 키프로스 정부는 그런 계획이 전혀 없다고 부인했다.
미국 해군 태평양함대 소속 제7함대의 순항미사일 구축함 맥캠벨호.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같은날, 유라시아 대륙의 정반대쪽인 극동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 인근 바다에선 미국 해군의 순항미사일 구축함이 ‘항행의 자유’ 시위 항해를 벌였다. 러시아가 ‘표트르 대제 만(영어로는 Peter the Great Bay)’이라고 부르는 이 수역은 러시아와 일본의 영해권 분쟁 지역이다. 미 해군 태평양함대 사령부 대변인은 <시엔엔>(CNN) 방송에 “러시아의 과도한 영해권 주장에 맞서 미국과 다른 나라들의 바다에 대한 권리와 자유, 합법적 이용권을 보장하기 위해 구축함 매캠벨호가 표트르 대제 만을 항해했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미국이 이 수역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벌인 건 옛소련 시절인 1987년 이후 처음”이라며 “이런 작전들은 미국이 국제법이 허용하는 곳은 어디든 비행하고 항해하고 작전할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