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아프리카 북부 해안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으로 가려는 난민 수백명이 작은 고깃배에 발디딜 틈 없이 올라타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달 초 유엔난민기구(UNHCR)의 집계를 보면, 올해 들어서만 2000여명이 지중해를 건너다 조난 사고 등으로 목숨을 잃는 등 최근 5년새에만 지중해에서 1만7500여명이 즉거나 실종됐다. 출처 유엔난민기구
아프리카의 자발적 식민지 건설이 유럽 난민 위기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최근 8년째 유럽의 난민 위기가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 등 정치 지형도까지 바꿔놓고 있는 가운데, ‘아프리카 식민지 도시 개발’이 해법의 하나로 언급되면서 논란을 낳고 있다.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들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인 ‘아랍의 봄’이 내전과 쿠데타로 번지는 등 사실상 실패하면서, 유럽은 이들 지역에서 전쟁과 박해, 빈곤을 피해 들어오려는 수백만명의 난민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독일의 귄터 노케 아프리카 담당 장관은 최근 영국 <비비시>(BBC) 방송 인터뷰에서, 유럽행 난민 물결을 차단하기 위해선 유럽연합(EU)이나 세계은행(WB) 등 국제사회가 아프리카에 도시들을 건설하고 경영해 현지인들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개발을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국 영토를 국제기구에 50년간 임대해 자유로운 개발을 허용”하도록 하자는 방안이다. 누케 장관은 “이런 자유도시들이 경제성장과 번영을 창출한다는 게 기본 구상”이라며, 아프리카의 젊은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경제 기지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구상은 즉각 격렬한 찬반 논란을 불러왔다. 55개 회원국이 참여한 아프리카연합(AU)은 외지인들의 도시 건설은 ‘신식민주의’라며 반대하고 있다. 수백년에 걸친 유럽의 식민지 지배와 수탈의 악몽 때문이다. 아프리카연합의 레슬리 리처 공보국장은 “(누케 장관의 제안은) 이주 문제에 대한 나태한 대답”이며 “아프리카 국가들이 주권을 포기하고 국제기구들의 도시 경영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만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케냐의 스타라스모어 대학의 카롤 무시오카 교수(경영학)는 “외세가 아닌 아프리카인들의 혜택을 보장하기 위한 진정한 시도라면 매력적인 제안”이라며 개방적 태도를 보였다고 <비비시> 방송은 전했다. 무시오카는 “많은 아프리카 정부들이 자국민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는 데 실패했다”며, “나는 자발적 식민주의를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3년 유엔난민기구(UNHCR)가 튀니지 북서부의 지중해 연안 지역에 세운 난민캠프. 출처 유엔난민기구
‘자율형 식민지 임대’ 발상이 새로운 건 아니지만, 당사국들 뿐 아니라 서방 전문가들 사이에도 시각은 엇갈린다. 아직까진 실행된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긍정적 의견을 표명한 정치인들을 매장시키는 수렁이기도 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폴 로머 뉴욕대 교수는 유럽 난민위기가 본격화하기도 전인 2009년에 비슷한 제안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개발도상국들이 외국에 영토 일부를 내주고 밑바닥에서부터 철저하게 ‘임대 도시’를 건설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 도시들은 수용국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법과 제도로 운영된다는 것.
앞서 한 해 전인 2008년엔 아프리카 동남부의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의 마르크 라발로마나나 대통령이 로머 교수를 만난 뒤 자국에 그런 계획을 시행하는 것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당시 그는 내국인과 외국 이주자들을 위한 임대 도시 2곳을 건설할 수 있다고까지 밝혔다. 그런 구상은 그러나 야당이 라발로마나나 대통령을 ‘국가반역죄’로 고발하고 대대적인 반대 시위에 나서면서 물거품이 됐고, 라발로마나나 대통령은 이듬해 총선에서 낙선하고 말았다.
25일 멕시코 북쪽 국경도시 티후아나에 도착한 온두라스 출신의 한 난민이 미국과의 국경을 가르는 철조망 건너편 미국 국경수비대와 마주 서 있다. 티후아나/AP 연합뉴스
2011년엔 중미의 빈국 온두라스의 포르피리오 로보 소사 대통령이 “임대 도시가 자국민들에게 경쟁력 있는 일자리와 양질의 보건 및 교육, 최고 수준의 법과 치안 시스템을 제공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일 것”이라며 지지했다. 올해 들어 더욱 심각해진 미국행 난민 행렬(카라반) 문제는 이미 당시에도 양국 모두에 골칫거리였다. 그러나 소사의 구상 역시 실행에는 못 미쳤다. 현지 신문인 <라 프렌사>가 “그런 계획은 나라를 중미의 홍콩으로 만들 것”이라고 비판한 것을 시작으로, 온두라스 정부가 영토 주권을 잃을 것이라는 비판과 역풍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1842년 중국이 아편전쟁에 패배하고 영국에 홍콩을 넘겨준 난징조약의 전례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현재 온두라스 정부는 경제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특례법을 적용하고 서방의 투자를 유치하는 다수의 ‘특별경제구역(SEZs)’ 창설을 희망하고 있다. 온두라스의 아르날도 카스티요 경제장관은 “이런 특별경제구역이 실현되고 사람들이 그게 얼마나 성공적인가를 실제로 보게 되면 온두라스의 모든 정치인들이 서로 자기 지역으로 유치해달라고 신청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이런 구상에 대한 거부감도 만만치 않다. <비비시> 방송의 스페인어 서비스인 ‘비비시 문도’의 현지 기자는 “온두라스의 빈곤층 대다수는 ‘특별경제구역이 오직 부자들만 이익을 보고 나머지 대다수 국민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그들만의 폐쇄 공동체를 확장시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지난 8월 독일 동부 작센 주의 켐니츠에서 극우주의자들이 반난민 시위를 벌이고 있다. 켐니츠/AP 연합뉴스
범아프리카 온라인 뉴스매체인 <올아프리카닷컴>의 멜리사 브리츠 기자는 지난 23일 ‘자발적 식민주의? 노 생큐’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독일의 귄터 노케 장관은 마치 (과거 서구열강들의) 아프리카 쟁탈전이 충분하지 않았던 것인양, 유럽이 이 대륙을 쥐어짤 또다른 기회를 누릴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은 부패와 무능력이 아프리카의 발명품인 것처럼 굴지만, 실은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공적”이라며 “지금도 서구 정부와 기업들이 땅을 차지한 지역에선 원주민이 집을 잃고 천연자원에서 소외되며 엘리트 지배계급만 혜택을 본다”고 지적했다.
미국 조지타운대의 켄 오팔로 교수도 <비비시>에 “엔클레이브 경제를 만든다는 건 미친 생각”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런 도시들은 역내 이주만 촉발할 뿐, 전체 경제에 도움이 되지도, 아프리카 국가들이 고군분투 중인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지도 못한다는 것. 그는 “아무리 엉망이고 부패하더라도 당사국의 제도를 통한 문제 해결이 가장 낫다”며 “아프리카를 돕는 최선은 역내의 중소기업들이 고용을 창출하도록 투자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2015년 11월 그리스 레스보스섬 앞바다에서 시리아와 이라크 출신 난민들이 구조되고 있다. 위키미디어코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