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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2살·5살 아들 휩쓸려가는데…” 간발 차로 삶과 죽음 엇갈려

등록 2018-07-29 20:52수정 2018-07-30 11:44

[평화원정대] 라오스 댐 붕괴 현장을 가다

댐 아래 마을 28살 주민 분봇
가족들 떠내려가도 손도 못 써
40살 위앙은 자녀와 함께 있다가
밤새 나무 붙잡고서 겨우 살아남아

학교·유치원 등 임시 대피소들
목숨 겨우 건진 주민들로 어수선
울타리 빨래들 ‘희망의 끈’ 상징
라오스 댐 붕괴 7일 째인 29일 오후 (현지시각) 라오스 아타프주 사남사이 마을이 댐에서 밀려온 물에 진흙탕으로 뒤 덮혀있다. 중국 구조대원들이 트럭을 타고 사고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드론 촬영) 아타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라오스 댐 붕괴 7일 째인 29일 오후 (현지시각) 라오스 아타프주 사남사이 마을이 댐에서 밀려온 물에 진흙탕으로 뒤 덮혀있다. 중국 구조대원들이 트럭을 타고 사고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드론 촬영) 아타프/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5억t짜리 물폭탄이 휩쓸고 지나간 피해 마을은 여전히 물지옥 그 자체였다. 지난 28일 오후 댐 붕괴로 물벼락을 뒤집어쓴 라오스 아타푸주에서도 가장 피해가 큰 것으로 알려진 마이마을 초입이 그랬다. 온 천지에 어른 무릎 높이까지 들이찬 흙탕물은 5억t이라는 수치에 갇힌 물의 크기를 웅장한 모습으로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물 위에는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고 갈 곳을 잃은 큰 지렁이들이 수면 위에서 꿈틀거렸다.

수도 비엔티안과 중국에서 왔다는 구조대원들은 4륜 구동 스포츠실용차(SUV)를 마을 초입에 받치고 수시로 200여m 앞 마을로 보트를 타고 드나들며 구조작업을 벌였다. 온갖 진흙길을 잘도 헤치고 온 평화원정대 취재차량도 거대한 물웅덩이 앞에선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한 중국 구조대원은 “모두 76명이 와서 곳곳에서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한 구조대원은 “우리는 수도 비엔티안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일부 구조대는 제트스키까지 트레일러에 매달고 현장에 왔다.

거대한 물결의 습격을 당한 13개 마을은 여전히 물에 잠긴 채 일반인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구조대원들만 보트를 타고 진입할 수 있다. 오후 1시30분께는 구조대원 10여명이 흰 천으로 싼 무언가를 나무배에 싣고 걸어 나왔다. 옆에서 지켜보던 구조대원 한명이 “마을 주민의 주검”이라고 말했다.

이날 침수 피해 마을로 가는 길은 온통 진흙탕이어서 4륜 구동 스포츠실용차가 아니면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첫째로 나타난 꼬껑마을에선 집들이 물에 잠기거나 무너진 채 방치된 모습이었다. 물에 둥둥 떠 있던 대형 유조차가 물이 빠지면서 집 옆에 걸터앉은 모습도 목격됐다. 참극이 벌어지던 날 주민들이 타고 이동한 나무배가 갈 곳을 찾지 못한 채 도로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마을의 울타리엔 비닐봉지 등 쓰레기가 곳곳에 걸려 있어, 울타리 높이까지 물이 휩쓸고 지나갔음을 뒤늦게 증명하고 있었다.

이날 오전 아타푸주 사남사이에 있는 교육스포츠센터 이재민 대피소에서 평화원정대와 만난 피해 마을 주민들은 악몽 같았던 침수 순간을 설명하며 몸서리쳤다. 수마가 들이닥친 순간을 전하는 주민들의 표정엔 당시의 공포와 긴박감이 묻어났다.

지난 23일 밤 라오스 아타푸주 세피안강 옆 타우언마을에 사는 타오오(35)는 갑자기 차오르는 강물에 아끼는 소 3마리를 내팽개친 채 인근 언덕으로 뛰어 올라갔다. 집에서 5㎞ 떨어진 곳에 방목하는 소를 보러 갔을 때였다. 한살 어린 아내 펀이 “둑이 터졌다니 조심하라”며 걸어온 전화를 끊자마자 벌어진 일이다. 떠내려가는 소들을 우두커니 지켜보며 발을 굴러야 했지만 그나마 자신의 목숨을 건진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저는 그날 저녁 7시께 상류에 사는 친척집 전화를 받고 둑이 무너진 걸 알았어요. 지갑이고 뭐고 내버려둔 채 일곱살 아들 에랑 네살배기 딸 촘푸 손을 잡고 4㎞ 떨어진 언덕을 향해 계속 달렸죠. 엄청 무서웠어요.” 아내 펀이 두 손을 번갈아 휘젓는 동작을 남편 앞에서 해 보이며 말했다. 그날의 긴박한 상황을 설명하는 그의 얼굴엔 잔뜩 긴장이 배어 있었다.

에스케이(SK)건설이 짓다 폭우와 함께 그날 밤 무너진 ‘보조댐 디(D)’는 그렇게 네 식구의 삶도 한꺼번에 무너뜨렸다. 모내기를 절반가량 끝낸 25마지기 논에는 펄이 가득 찼고 농기계와 자동차는 모두 떠내려갔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당장 마실 물도 부족한걸요.” 타오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라오스 참파사크의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보조댐 붕괴 사고로 큰 피해를 본 아타푸주 사남사이에서 한 주민이 29일 오후(현지시각) 구호품을 받고 있다. 아타푸/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라오스 참파사크의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보조댐 붕괴 사고로 큰 피해를 본 아타푸주 사남사이에서 한 주민이 29일 오후(현지시각) 구호품을 받고 있다. 아타푸/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설탕, 수건, 속옷, 쌀, 모기장, 우유, 생리대까지, 부부의 손엔 조금 전 구호대원에게서 받은 물품이 가득했다. 이날 구호품을 전달한 라오스 ‘투자 및 수력발전 자문회사’의 책임자 텅러 붓사건(50) 현장 매니저는 “회사 직원 50명이 차량 15대에 구호물품을 싣고 봉사활동 하러 왔다”고 말했다.

타오오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사남사이유치원 대피소엔 타우언마을 주민 80여명이 머물고 있었다. 전체 700명 주민 대부분은 처음 대피한 산자락에서 아직 내려오지 못하고 있다고 이재민들이 말했다. 이재민들은 나무로 얼기설기 벽을 지은 건물의 시멘트 바닥에 누워 있거나 앉아서 얘기를 나눴다. 그날 밤 ‘물폭탄’을 피하느라 주민들이 아무런 경황이 없었음을 보여주듯 대피소 내부는 전혀 정돈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평화원정대가 그동안 찾은 우간다의 남수단 난민촌을 비롯해 이탈리아의 북아프리카 난민촌, 요르단의 시리아 난민촌, 방글라데시의 로힝야 난민촌이 그나마 정리된 가난의 모습이었다면, 이곳은 평화롭던 주민이 이재민으로 신분이 바뀐 지 닷새밖에 되지 않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다른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던 위엔텅(57)은 이번 사고로 가족을 잃지 않아 다행이라면서도 키우던 소 30마리가 몽땅 급류에 떠내려갔다며 가슴을 쳤다. 그는 “대피하다 라힌따이마을에서 아기를 안은 채 죽은 여자를 내 눈으로 봤다”며 “우리 마을엔 아직도 어른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사남사이중학교에 차려진 대피소에서 29일 만난 분봇(28)은 아직도 현실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가 살던 타셍찬마을은 그날 댐에서 쏟아진 물이 지나가는 길목에 있어 이번에 가장 큰 희생을 치른 곳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전체 144가구 가운데 16가구만 생존이 확인됐다. 분봇도 집에 있던 다섯살 그리고 두살짜리 아들과 아버지, 처제가 엄청난 위력의 물에 떠내려가는 모습을 속절없이 지켜봐야 했다.

“저녁 8시 정도에 물이 들이닥치기 시작했어요. 두번 물이 닥쳤는데, 처음엔 허리 정도까지 왔다가 방비할 틈도 없이 또 들이닥쳤어요. 집이 모두 잠길 정도로 높은 물이었어요. 힘겹게 나무 같은 것을 잡고 버텼는데 가족들을 구할 방법이 없었어요.” 이 와중에 부인과 자신 단 두 사람만 생명을 건졌다. 하루에도 수천번씩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사고 당시 장면 때문인지 분봇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분노와 슬픔 속에 빠진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더 이상 인터뷰를 진행하기조차 어려웠다.

라오스 아타푸주 사남사이 지역 중학교에 마련된 주민 대피소에서 29일 오후(현지시각) 한 피해 주민이 슬픔에 잠겨 있다. 아타푸/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라오스 아타푸주 사남사이 지역 중학교에 마련된 주민 대피소에서 29일 오후(현지시각) 한 피해 주민이 슬픔에 잠겨 있다. 아타푸/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천당과 지옥은 종이 한장 차이였다. 같은 마을에서 온 위앙(40)은 아이들과 함께 쉬다 물벼락을 맞은 탓에 가까스로 두 남매를 구할 수 있었다. 위앙은 “순식간에 물이 찼어요. 모두 겁에 질려서 아무 생각도 못했죠.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고만 생각했어요. 아이들과 나무를 잡고 밤새 버텼죠. 다음날 친구들이 구해줬어요.” 위앙이 그날의 긴박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내뱉듯 말했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온통 대피소가 차려진 사남사이 시내는 구호물품을 실어 나르는 헬리콥터와 중국, 타이, 베트남 등에서 온 구호차량으로 시끌벅적했다. 29일 사남사이군청에서 원정대와 만난 현장 공무원은 현재까지 댐 붕괴로 7300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123명이 실종됐다고 밝혔다.

사남사이 시내엔 갑자기 몰려든 피난민이 내건 빨래가 길가의 울타리를 알록달록 물들였다. 집과 가축 등 가진 것을 모두 잃었으나 저마다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 새 희망을 일구고픈 이재민들의 꿈을 상징하는 듯 보였다.

우기를 맞은 라오스에는 비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하고 있다. 원정대가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이번에 사고가 난 참파사크 지역의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D 보조댐’을 찾은 27일에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보조댐으로 올라가는 길목엔 곳곳에 뿌리 뽑힌 나무들이 나뒹굴었다. 그동안 비가 얼마나 많이 왔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라오스 참파사크의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보조댐 붕괴 사고가 일어난 지 5일 만인 28일 오후(현지시각) 길이가 770m에 이르는 댐이 형체도 없이 사라진 붕괴 현장에서 댐이 막아 놓았던 물이 하류 쪽으로 흘러 내려가고 있다. 댐을 이루던 흙이 쓸려나간 가장자리는 가파른 벼랑으로 바뀌었고, 계곡 바닥에는 검은색 암반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쓸려나간 댐 주변에서 댐 공사 관계자들(사진 오른쪽 아래)이 사고 현장을 살피고 있다.(소형 무인항공기 촬영) 참파사크/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라오스 참파사크의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소 보조댐 붕괴 사고가 일어난 지 5일 만인 28일 오후(현지시각) 길이가 770m에 이르는 댐이 형체도 없이 사라진 붕괴 현장에서 댐이 막아 놓았던 물이 하류 쪽으로 흘러 내려가고 있다. 댐을 이루던 흙이 쓸려나간 가장자리는 가파른 벼랑으로 바뀌었고, 계곡 바닥에는 검은색 암반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쓸려나간 댐 주변에서 댐 공사 관계자들(사진 오른쪽 아래)이 사고 현장을 살피고 있다.(소형 무인항공기 촬영) 참파사크/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마침내 현장에 접근했을 때 댐을 받치고 있었을 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하류에서 상류 쪽을 바라볼 때 중앙과 왼쪽의 흙댐 면은 완전히 휩쓸린 처참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양쪽 끝에 간당간당 붙어 있는 일부 흙더미가 이곳이 댐이었음을 말해줬다. 계곡의 바닥은 검은색 암반을 그대로 노출한 상태였다. 댐 형체가 거의 사라진 탓에 사고 당시 댐이 무너져 물이 쏟아진 것인지, 물이 둑을 넘어 댐이 무너진 것인지를 판단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였다.

댐을 이루던 흙이 쓸려나간 단면은 매우 가파른 벼랑으로 바뀌었다. 산자락을 따라 모인 빗물이 거대한 물길이 되어 그 아래를 굽이쳐 흘렀다. 가까이 다가서기조차 위태로운 지경이었다. 여기에 장대비까지 오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어 추가 붕괴의 위험성마저 감지됐다. 하지만 현장 통제는 느슨했다. 평화원정대가 댐에 접근하는 동안 이를 통제하는 인력은 만날 수 없었다.

참파사크·아타푸/글 전종휘 유덕관 기자·사진 김봉규 선임기자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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