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각)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만나 악수한 뒤 사진 촬영을 위해 취재진을 잠시 바로보고 있다. 케빈 림/스트레이츠 타임스 제공
12초였다.
70년 갈등과 반목을 뛰어넘는 세기의 첫 만남, ‘핵 단추’ 크기를 자랑하던 두 사람 사이에 상대방 손을 부술 듯한 힘겨루기는 없었다.
12일 오전 9시(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72)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34) 북한 국무위원장이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만나 12초간 악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오른팔을 자신의 왼팔로 가볍게 두드리며 환대의 뜻을 나타냈다. 긴 악수가 끝난 뒤엔 취재진을 향해 자세를 취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오른손으로 김 위원장의 왼팔을 두드리며 회담장으로 안내했다.
북-미 정상회담 전부터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어떻게 악수할까’도 흥미로운 관심사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타국 정상을 만날 때마다 악수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심기를 적극적으로 드러낸 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2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의 손을 무려 19초 동안 잡아 흔들었다. 당황한 아베 총리가 여러 차례 손을 빼려 시도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손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놓아주지 않았다. 마침내 손을 뺀 아베 총리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혀를 내둘렀다. 지난해 3월 백악관에서 열린 독일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먼저 “우리 악수할까요?”라고 물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얼굴을 찌푸린 채 딴청을 피워 ‘외교 결례’ 논란을 빚기도 했다.
지난해 3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악수 제안을 거부하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악수가 악명을 얻다 보니 오히려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5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서 처음 만난 마크롱 대통령의 손을 억세게 움켜 쥐었다. 40살인 젊은 마크롱 대통령은 물러나지 않고 태연하게 웃으며 이를 받아냈다. 이후 마크롱 대통령은 8일 캐나다 퀘벡주 샤를부아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손등에 하얀색 엄지손가락 자국이 날 정도로 손을 꽉 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의 악력에 다소 얼굴을 찡그렸다.
트럼프의 발언을 모아둔 책 <트럼프가 본 세계>를 보면, 트럼프는 지난 1999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나는 악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악수는) 야만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트럼프는 악수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로 “악수를 통해 감기에 걸리거나 독감에 전염될 수도 있다는 의학 보고서가 항상 있었다”고 언급했다.
4월27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군사분계선에서 처음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한편,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악수할 때 상대방의 손을 자기 몸 쪽으로 살짝 끌어 당기는 버릇이 있다. 또 4월27일과 5월26일 남북 정상회담 때는 문 대통령을 끌어 안는 파격적인 모습을 모였다. 특히 5월26일 이뤄진 ‘번개’ 정상회담 때는 문 대통령을 만나자마자 고개를 교차해 가며 세번이나 끌어안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나 이날 북-미 정상 사이의 ‘세기의 포옹’은 이뤄지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키는 190㎝, 김 위원장은 170㎝(추정)이다. 두 사람 사이에 포옹은 없었다. 김 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두 차례 정상회담에서도 포옹은 하지 않았다.
김남일 황금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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