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현지시각) 한겨레평화원정대가 우간다에서 르완다로 넘어가기 전 르완다 쪽의 모습. 시골의 비포장길 같은 이 구간 어디에서도 국경선을 확인할 수 없었다.
국경이란 놈을 두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만져본 적은요?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국가 간 무력분쟁을 일으키고, 그걸 지킨다는 명분 아래 사람들의 목숨까지 앗아가는 걸까요? 사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이 질문에 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국토의 3면이 바다에 둘러싸였고 북쪽으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군사분계선(MDL)이 가로막고 있는데 어딜 가서 국경을 본단 말입니까?
그래서 국경 넘기를 밥 먹듯 하는 평화원정대의 숙제 가운데 하나는 진짜 국경을 찾는 것입니다. 한반도, 특히 남한에선 구경조차 할 수 없다는 국경을 한번 찾아보자!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출발 한달 반이 되도록 명확한 실체는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5월21일(한국시각) 현재까지 남아공→짐바브웨→잠비아→탄자니아→케냐→우간다→르완다→우간다→케냐에 이르기까지 국경을
8차례 넘었지만, ‘실물’의 국경은 코빼기도 찾기 힘들더군요. 국경으로 추정되는 곳에 꽂아놓은 철조망이나 바리케이드만 가끔 눈에 띌 뿐입니다.
지난 20일 평화원정대가 르완다에서 우간다로 국경을 넘어가기 전에 들른 르완다 쪽 입출국 심 사장 모습. 한국의 시골 지역 버스 정류장 모습을 닮았다. 한겨레평화원정대
20일 르완다에서 우간다 국경을 넘어올 때 일입니다. 르완다 출국 심사장을 지나면 200여m 거리를 걸어가야 우간다 입국 심사장에 이릅니다. 이 사이엔 포장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흙길 위에 우기를 맞아 생긴 흙탕물 웅덩이만 가득합니다. 한쪽엔 산, 한쪽엔 들이 있습니다. 여느 아프리카 나라들의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구글 지도는 분명 원정대의 발걸음이 국경선 위를 지나고 있다고 알려줍니다. 하지만 원정대는 어디까지 르완다이고 어디부터 우간다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르완다(키갈리)를 출발해 우간다(캄팔라)를 거쳐 케냐(나이로비)까지 가기 위해 원정대가 탄 ‘인터내셔널 버스’의 운전자가 르완다인인지 우간다인인지 케냐인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만큼이나 국경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란 어렵습니다.
국경을 넘고 있음을 가장 명확하고 빠르게 알려주는 것은 역시 자본입니다. 국경에 닿을라치면 우선 모바일로 연락이 옵니다. 잠시 뒤 넘어갈 나라의 통신사입니다. 20일 새벽 케냐로 넘어올 때는 ㅅ통신사가 영어로 “케냐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번으로 접속하세요. 당신이 우리와 함께하길 기대합니다”라는 살가운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평화원정대가 르완다 키갈리 취재를 마치고 케냐 나이로비로 가는 버스를 타기 전 사진을 찍었다. 떠났습니다. 버스는 르완다를 출발해 우간다와 케냐까지 국경을 두번 넘으며, 27시간 동안 달렸다.
통신사의 격한 모바일 환영과 함께 오프라인에서 활동하는 개인 환전상들도 ‘여기가 국경 근처구나’라는 걸 알게 하려는 듯 극성스럽게 따라붙습니다. 원정대로선 매우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환율을 제대로 모르고 바꿨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니까요.
실제 환전상에게 눈 뜨고 코 베일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지난 14일 우간다에서 르완다로 들어갈 때 국경에서 생긴 일입니다. 원정대원 한 명이 국경 언저리 지역에서 접촉한 환전상에게 개인돈 미화 20달러를 르완다프랑으로 환전했습니다. 당시 환율로는 1달러를 800프랑과 바꾸면 큰 손해는 아닌 상황이었습니다. 20달러를 받아든 환전상은 1000프랑짜리 16장을 주면 간단히 끝날 상황에서 먼저 10장만 주더니 잠시 쉬었습니다. 그러곤 이어 100프랑짜리 6장을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시아인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외국 화폐 두 종류를 맞교환할 때 발생하는 단위의 착각을 이용하려는 술수입니다. 남의 나라 국경에서 폭력사태를 빚을 순 없어 조용히 말로 해결했습니다.
국경을 넘었단 사실을 화장실 사용료로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르완다에서 우간다로 넘어가는 입국 심사장의 공중화장실은 사용료로 500우간다실링을 받습니다. 주머니에 우간다실링이 없으면 액면가 대비 화폐가치가 큰 르완다프랑을 낸 뒤 다시 우간다실링으로 거스름돈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환율 산정 때 화장실 지킴이가 손해 보는 일은 없습니다. 손해는 이쪽 몫입니다. 화장실을 가지 않을 도리는 없으니까요.
국경은 사실 실재하지 않는 선입니다. 어디까지 네 땅이고 어디부터 내 땅인지 구분하기 위해 쌍방이 땅 위에 가상으로 그어놓은 ‘개념의 선’일 뿐입니다. 그 위에 말뚝 몇개 박아놓고 국경이라고 우기는 것이라고 하면 ‘오버’일까요?
지난달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북쪽으로 살짝 넘어갔다 온 그 10㎝ 높이의 군사분계선이 당장에라도 남북한이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한시적이고 잠정적인 국경’으로 이름이 바뀌길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전종휘 유덕관 기자
symbio@hani.co.kr
‘한 장의 평화’ 평화원정대가 르완다에서 만난 은지루원상가 프랑수아(왼쪽부터), 빈센트 은시지룽구와 아들 히르와 브랜던, 아내 우위마나 살라마 가족, 은다이사바 필리프가 각자 생각하는 평화의 의미를 담은 ‘한 장의 평 화’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커피 원두를 생산하는 쿠카무협동조합 조합장인 프랑수아는 키냐르완다어로 커피를 뜻하는 ‘이카와’(Ikawa)를, 제노사이드 생존자인 은시지룽구와 그의 가족, 역시 제노사이드 생존자인 필리프는 똑같이 키냐르완다어로 안전을 뜻하는 ‘우무테카노’(Umutekano)를 평화의 뜻으로 풀었다. 무사사 키갈리 후예/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