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이란 테헤란 거리에서 청년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핵협정 불인증에 대해 보도한 신문 기사를 읽고 있다. 1면 기사에는 ‘미친 트럼프와 논리적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이란핵협정)’이란 제목이 써 있다. 테헤란/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 이란핵협정을 불인증한다고 발표하기 직전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 협정의 준수를 다짐했다고 프랑스 대통령궁이 밝혔다. 마크롱은 트럼프가 무슨 말을 해도 유럽은 이 협정을 계속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트럼프는 유럽은 이란의 돈에만 관심이 있다고 조롱했다. 트럼프는 마크롱이 자신에게 전화를 했을 때 “이봐, 엠마뉘엘, 이란은 르노(프랑스 자동차 회사)에게 많은 돈을 줬지. 그 돈을 받아서 잘 즐기라고,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고보자고”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프랑스가 르노가 이란과 맺은 계약 때문에 이란에 아부한다고 비난한 것이다.
트럼프 취임 이후 계속된 미국과 동맹국 사이의 불화와 균열이 트럼프의 이란핵협정 불인증으로 변곡점을 넘고 있다. 국가 지도자들의 대화가 인신 공격과 조롱으로 도배되는 사태가 이런 현실을 상징한다.
이란핵협정에 미국과 함께 조인한 서방 동맹국들은 이날 일제히 이 협정은 공동의 국가안보 이익이라며 준수를 다짐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이날 공동성명을 발표해 “우리는 협정 준수와 모든 관련국의 전면적 이행을 지지한다”며 협정은 “우리 공동의 국가안보 이익이다”고 강조했다. ’포괄적공동행동계획’인 이란핵협정은 지난 2015년 미국뿐 아니라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 외에 독일, 유럽연합(EU)도 참가한 국제적 협정이다.
페데리카 모게리니 유럽연합 외교담당 집행위원도 이란핵협정은 “국내 문제가 아니고, 한 국가에 속한 것이 아니다”고 다소 경멸적 어조로 미국을 겨냥하는 성명을 내놨다. 그는 트럼프가 힘이 세겠지만, 협정을 바꿀 힘을 없다고 비판했다. 아마노 유키야 국제원자력기구(IAEA) 의장은 이란은 협정을 이행하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핵검증 체제”를 따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협정에 참가한 유럽 국가의 고위 관리들은 개인적으로 미국에 대한 반대를 외쳐서 득 될 것이 없다며, 대신에 협정이 파기되면 잃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미국 의원들에게 설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이 협정에 참가한 중국과 러시아는 논평할 가치조차 없다는 태도이다. 중국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으나, 이전부터 미국이 이 협정을 준수해야 한다고 촉구해왔다. 러시아 외무부는 성명을 내고 “국제관계에서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언사는 용납할 수 없다”고 협정 준수를 다짐했다. 성명은 또 이란에 대해 “유엔 안보리가 제재를 다시 취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미국의 이란핵협정 파기 위협으로 가장 곤란한 처지에 빠진 동맹은 영국이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와 공공연한 불화를 표출하는 독일과 프랑스와는 달리 영국은 트럼프에게 싫은 소리를 한마디도 하지않아왔다. 전통적으로 유럽 대륙 국가보다는 미국과의 관계가 친밀한 영국은 최근 유럽연합 탈퇴 문제를 놓고 미국의 지원이 더욱 절실한 실정이기도 하다.
영국은 일단 미국과 서방 동맹국 사이의 불화를 빚은 어떤 사안보다도 이번 이란핵협정 문제에서는 미국에 비판적이다. 메이 총리가 독일 및 프랑스와 공동성명을 낸 것에서 드러난다. 하지만, 영국이 어디까지 트럼프의 미국에 비판적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