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현지시각)은 9.11 테러 발생 16주기였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사람들은 그날의 비극을 돌아보고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그리고 한 사람. 이맘 때 즈음이면 ‘진짜 현실 영웅’이라며 미국 소방관들을 중심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언급되는 헐리우드 배우가 있다. ‘저수지의 개들’, ‘콘 에어’, ‘파고’ 등을 통해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쳐온 스티브 부세미(59)다. 영국 <인디펜던트> <더선> 등이 소개한 부세미의 이야기는 이렇다.
부세미는 2001년 9월11일 이슬람 테러 집단에 의해 세계무역센터 등이 공격 당한 다음날,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갔다. 그는 소방관 옷을 입고 하루 12시간 넘게 빌딩 잔해들을 치우고 땅을 파면서 생존자들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몇날며칠 먼지를 뒤집어썼지만 당시 언론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명성을 위해서 하는 일이 아니다”라면서 그가 언론노출을 꺼려했기 때문이다.
한 미국 방송사 다큐멘터리 때 소개된 소방관 때의 스티브 부세미 모습. 맨 왼쪽이 스티브 부세미.
사실 부세미는 소방관 출신의 배우 겸 감독이다. 1976년 그가 18살 때 소방관 자격증을 땄고 1980년대에 4년 동안 뉴욕 맨해튼에서 소방관으로 일했다. 불이 나면 달려가 불 속에서 사람들을 구해내는 게 그의 임무였다. 배우로 데뷔하면서 소방관 일을 접었지만 9·11 사건이 터지자 그는 주저없이 옛 동료들에게 달려갔다. 2012년 몬스터 허리케인 샌디가 뉴욕을 덮쳤을 때도 그는 소방관들과 함께 잔해들을 치웠다. 스크린 안에서는 주로 사이코 같은 악당 역을 하는 부세미였으나 현실에서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는 어디든 달려가는 ‘슈퍼맨’이었던 것이다.
부세미는 2003년 소방관 처우 개선을 위한 집회에 참가해 연설을 했다가 체포된 전력도 있다. 2014년에는 에이치비오(HBO)에서 방영한 뉴욕 소방관 관련 다큐 프로그램에 출연해 소방관들의 진짜 삶을 들려줬다. <시비에스>(CBS)에 출연해서는 “소방관들은 다른 이들을 돕는 최고의 사람들”이라고 밝힌 바 있다.
11일(현지시각) ‘소방 형제들’ 페이스북에 올라온 스티브 부세미의 모습. ‘한번 소방관은 영원한 소방관’이라고 적혀 있다. 페이스북 갈무리
2013년 미국의 ‘소방 형제들’ 페이스북에는 부세미의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이 올라왔다. “이 사람을 아시나요? 많은 사람들이 그가 배우이고 스티브 부세미라는 것을 알겠지요. 하지만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압니다. 그가 한때 뉴욕에서 가장 용감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스티브 부세미가 달라보이지 않는가.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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