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44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공연하고 있는 밥 딜런의 모습.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밥 딜런은 말이 없고, 주변 평자들은 시끄럽다.
“아마 2025년 노벨 문학상은 도널드 트럼프가 트위터 글 때문에 수상할 거다.” 영국 <인디펜던트>가 14일 가수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 논란을 전하며 쓴 표현이다. 트럼프도 트위터에 쓴 막말로 전 세계에서 지지자들을 격동시키고 논란을 불렀으니 문학적 성과가 있는 게 아니냐는 조롱이다.
올해 노벨 문학상 발표 이후 모든 평자들은 딜런의 음악성과 그 사회적 공헌을 한목소리로 인정한다. 하지만 그가 문학상을 받을 만한지는 별개 문제라는 목소리도 크다. 그에게 상을 수여하게 된 그의 가사는 음악으로서 평가받아야지, 문학으로 평가받는 건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이런 반응은 특히 ‘문학상’을 뺏긴 듯한 작가들에게서 두드러졌다. <트레인스포팅> 등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작가 어바인 웰시는 “나는 딜런의 팬이기는 하나, 이건 횡설수설하는 노망난 히피들의, 맛이 간 오줌발에서 떼어낸 향수에 대한, 시대착오적 상”이라고 트위터에 혹평했다. 지난 2007년 숨진 미국 작가인 노먼 메일러가 생전에 “딜런이 시인이면, 나는 농구 선수다”라고 한 말이 문인들을 중심으로 다시 회자되기도 했다.
하지만 문학을 좁은 틀에 가둘 게 아니라는 평가도 많다.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를 비판한 <악마의 시>로 전 세계적인 논쟁을 부른 작가 살만 루시디는 딜런의 업적이 문학적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며 훌륭한 결정이라고 치하했다. 그는 “오르페우스(그리스 신화의 시인)부터 파이즈(파키스탄의 마르크스주의 시인)까지, 노래와 시는 밀접하게 연계되어 왔다. 딜런은 음유시인적 전통의 명철한 계승자다. (스웨덴 한림원의) 위대한 선택이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작 딜런은 노벨 문학상 수상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그의 대변인도 언급을 거부했다. 딜런은 평소 언론 인터뷰 등 외부와의 접촉을 꺼려오기도 했다.
그의 침묵은 1980년대 이후부터 사회 참여로부터 거리두기를 해온 행보의 일환으로 보인다. 유대계인 그는 80년대부터 기독교도로 개종한 뒤 복음주의적 신앙관에 바탕한 음악활동을 병행했다. 그의 이런 행보에 실망을 표시한 동료와 팬들도 많다. 딜런이 ’누군가를 섬겨라’(Gotta Serve Somebody) 같은 복음적 영가를 발표하자, 비틀스의 멤버였던 존 레넌은 딜런의 이런 태도에 항의하듯 ’너 자신을 섬겨라’(Serve Yourself)라는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1960년대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의 공연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딜런이 1960~70년대 사회참여적인 노래를 부르기는 했으나, 그가 사회참여를 행동으로 한 건 아니다. 그의 음악 동료이자 연인이었던 존 바에즈가 당시 반전운동 등 정치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했고, 좌파 성향을 보인 것과 대조된다. 두 사람이 1965년 헤어진 것도 그런 성향의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딜런은 2009년 제작된 바에즈에 대한 다큐멘터리에서 자신이 바에즈에게 잘못된 대우를 했다고 딜런으로선 이례적으로 사과했다. 바에즈는 14일 그의 수상에 대해 “밥 딜런의 불멸성에 대한 또 하나의 평가”라며 “그만큼 노래하기를 좋아하던 사람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고 말했다.
딜런은 자신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던 1965년 한 기자회견에서 ‘본인을 가수와 시인 중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나는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딜런은 노벨상 수상 발표 이후 열린 13일 라스베이거스 공연에서도 관중들이 ‘노벨 문학상’을 외쳤으나,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날 앙코르곡으로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만을 부르고, 관중들을 뒤로 했다. 정의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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