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터키 6시간의 쿠데타’
군부 일부 ‘세속주의’ 내걸고 반란
방송 장악했으나 SNS 통제 못해
군부 분열·시민 저항에 동력 잃어
정부군 3시간 뒤부터 대대적 반격
239명 사망, 군부 2839명 체포
군부 일부 ‘세속주의’ 내걸고 반란
방송 장악했으나 SNS 통제 못해
군부 분열·시민 저항에 동력 잃어
정부군 3시간 뒤부터 대대적 반격
239명 사망, 군부 2839명 체포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6일 새벽 4시 군부의 쿠데타 시도를 “실패한 쿠데타”로 규정하며 국가 전복 세력을 완전히 진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슬람주의 통치 방식에 불만을 품은 터키의 군 일부 세력이 15일 기습적으로 일으킨 쿠데타는 ‘6시간 만에’ 사망자 239명을 남긴 채 끝났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실패한 쿠데타를 발판 삼아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을 한층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스탄불을 지키는 터키 1군단과 공군 일부 세력이 주축인 쿠데타 세력은 15일 밤 10시29분께부터 헬리콥터와 전투기, 탱크를 동원해 이스탄불과 앙카라를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11시47분 훌루시 아카르 군 참모총장이 쿠데타 세력에 붙잡혔고, 16일 새벽 1시8분 앙카라 의회가 탱크로 포위됐다. 또 쿠데타 세력은 공항과 방송국을 장악하려 했다. 하지만 쿠데타 발생 3시간 뒤쯤인 16일 새벽 1시37분께 1군단 사령관이 “쿠데타 세력은 일부일 뿐이고 걱정할 게 없다”는 뜻을 밝히면서 반쿠데타 정부군의 반격이 본격화됐다. 1시59분 뒤 터키 전투기가 쿠데타 세력의 헬리콥터를 격추시켰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이 ‘쿠데타 반대’를 외치며 탱크 앞에 맞서는 등 민심이 쿠데타에 강하게 저항하면서 더욱 동력을 잃었다.
군 일부 세력이 왜 쿠데타를 일으켰는지는 이들이 쿠데타 발생 1시간30분 뒤인 16일 0시5분께 국영방송을 통해 내보낸 주장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쿠데타 세력은 “현 정부에서 민주주의적이며 세속주의적인 법의 통치가 침식됐다”고 주장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신이 세운 정의개발당(AKP)이 2002년 집권당이 된 뒤 장기집권하면서, 공공장소에서 히잡 착용을 허용하고 키스를 금지하는 등 이슬람주의를 강화해 나갔다.
터키의 국부로 불린 무스타파 케말(1881~1938)은 터키 공화국을 세우면서 세속주의 원칙과 정교분리 원칙을 강조했다. 서구화를 지향하는 ‘케말리즘’의 핵심인 세속주의가 위협받는다고 판단될 경우에 군은 이전에도 쿠데타를 일으키거나 정치적 압력을 가한 바 있다. 군은 1960년과 1997년에도 비슷한 이유로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시키거나 총리를 몰아낸 바 있다.
그러나 과거 터키의 성공한 쿠데타가 전군 지휘관 합의를 바탕으로 일어났다면, 이번 쿠데타는 ‘일부 세력’에 국한되면서 군에 의해 진압당했다. 군이 이전과 달리 이슬람주의 경향의 에르도안 쪽에 선 것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그동안 정적인 펫훌라흐 귈렌 추종자들을 축출하면서 군부 내에서 반에르도안 세력이 급격히 위축된 것과도 관련이 있다. 또 쿠데타 세력의 낡은 방식과 쿠데타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도 쿠데타 실패 원인이다. 쿠데타 세력은 1970년대처럼 일단 국영방송을 장악해 쿠데타 성명을 발표했으나, 소셜미디어를 통한 정보의 유통을 막지 못했다. 에르도안 대통령 쪽이 그동안 자신이 탄압해온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건재를 알리고, 대중의 쿠데타 반대 시위를 이끌어낸 건 아이러니다.
16일 오전 9시2분 외메르 첼리크 터키 유럽연합 담당 장관은 “쿠데타 상황이 90% 통제됐다”며, 쿠데타 상황 종료를 확인했다. 에르도안 정부는 쿠데타 주모자로 알려진 육군 2군 사령관 아뎀 후두티 장군, 전직 공군 사령관 아큰 외즈튀르크 등 주모자를 포함해 참여자 2839명을 체포했다. 또 쿠데타에 동조한 혐의로 판검사 2785명을 해임하고 이들에 대한 체포에 나섰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6일 “(이번 쿠데타가) 신으로부터의 선물이다. 우리 군을 청소할 이유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해, 반대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피의 숙청’에 나설 뜻을 밝혔다. 에르도안이 권위주의 통치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또 쿠데타의 배후로 자신의 정적인 펫훌라흐 귈렌을 지목하면서 미국 쪽에 귈렌을 터키로 넘길 것을 요구했다. 1999년부터 미국에 머물고 있는 귈렌은 미국 펜실베이니아 자택에서 <가디언> 등과 한 인터뷰를 통해 이를 즉각 반박하면서 오히려 ‘에르도안의 자작극’ 의혹을 제기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터키 정부는 지금 승리를 선언했지만, 이는 터키 민주주의 승리와는 거리가 멀다”며 “이제 위험은 에르도안 자신에게 있다. 선거에서 이기는 것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충분하지 않고 자제력을 보여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고 평했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16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지지자들이 이스탄불 탁심 광장에 모여 군부의 쿠데타 진압을 축하하고 있다. 이스탄불/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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