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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착한 성장 ④] 일본 히키코모리, 세상으로 끌어낸 건 일자리

등록 2016-06-05 19:57수정 2016-06-06 21:25

지난달 18일 일본 아키타현 후지사토 사회복지협의회의 ‘코밋토’ 1층 식당 주방에서 후쿠다 마코토(왼쪽) 등이 점심 요리에 사용할 면을 만들고 있다.
지난달 18일 일본 아키타현 후지사토 사회복지협의회의 ‘코밋토’ 1층 식당 주방에서 후쿠다 마코토(왼쪽) 등이 점심 요리에 사용할 면을 만들고 있다.
[더불어 행복한 세상] 창간 28돌 기획

착한 성장 행복한 사람들
④사회적 약자 보듬는 아키타현 후지사토

자립 돕는 사회복지협의회
대도시 나가 좌절 겪은 ‘2040’
방문상담 했지만 퇴짜맞기 일쑤
뒤늦게 일자리 원하는걸 알게돼
지원사업 공간 ‘코밋토’ 만들어
식당·밭일·눈치우기 등 기회 제공
일터 경험뒤 취직자 36명 달해
그들은 소리 소문 없이 돌아왔다. 고향으로 저마다 상처를 안고 숨어들었다.

일본 동북부 아키타현 후지사토마치(한국의 면에 해당)는 시라카미 산지 남쪽에 자리잡은 인구 3600여명의 마을이다. 젊은이들이 떠난 여느 시골처럼 65살 이상 인구가 40%를 넘는다. 도쿄역에서 아키타역까지 신칸센 고속철도로 4시간, 아키타역에서 후타쓰이역까지 열차로 1시간20분, 후타쓰이역에서 택시로 15분 남짓 달려야 도착한다. 겨울에 눈이 한번 내리면 1m를 훌쩍 넘게 쌓여 길이 끊어진다. 드라마 <아이리스>에 나온 눈 덮인 일본 마을의 촬영지도 아키타현이었다.

이런 오지 마을에서 대도시로 나갔던 젊은이들이 하나둘 되돌아왔다. 그러고는 집에 틀어박혔다. 그들은 ‘이상한 사람’,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비쳤다. 이 후지사토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들의 도전에 일본 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18일 오전 10시께 찾아간 후지사토 사회복지협의회에는 ‘복지의 거점, 코밋토’라고 쓰인 2층짜리 허름한 건물이 있었다. 1층 주방 안에선 점심을 준비하는 손길이 분주했다. 후쿠다 마코토(48)가 밀대를 이용해 반죽을 펴고 있었다. 그는 “요리에 전혀 취미가 없었는데, 코밋토에 와서 면 만드는 법을 배웠죠”라고 말했다. 소바와 우동을 만들어 점심때 마을 주민들에게 판매한다. “요리를 만들어 내놓았을 때 ‘맛있다’는 말을 듣는 게 제일 기쁘죠. 한달에 3만엔(약 33만원)가량을 받는데, 이번달부터 급료가 오릅니다. 돈을 받으니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후쿠다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는 히키코모리였다. 도쿄에서 태어나 중학 1학년 때 후지사토로 이사를 와 학교에서 ‘이지메’(집단 괴롭힘)를 당했다고 했다. 고교를 졸업하고 기후현과 도쿄의 운송회사에서 트럭 운전사로 일했다. 기관지 천식을 앓아 건강이 좋지 않았다. 1992년께 그는 후지사토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일하러 가실 때 차로 모셔다 드리는 것 말고는 밖에 나가지 않았어요. 친구들과의 관계도 전혀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사회복지사가 집에 찾아왔다. ‘코밋토가 생겼는데 나와서 소바 만드는 일을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다. “밖으로 나가기가 싫었어요. 그래서 ‘가겠다’고 해놓고는 안 나갔죠. 바람을 맞혔다고 봐야죠. 하하. 그래도 계속 집으로 찾아오니까 미안해서라도 한번 가보는 게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지사토 사협이 히키코모리의 존재를 의식하게 된 것은 2006년이다. 고령자 개호예방(돌봄이 필요한 수준으로 건강이 악화하는 것을 방지하는 일)을 담당하던 복지사가 고령자 상담을 하면서 ‘젊은 애들이 말도 없이 집에 틀어박혀 있다’는 하소연을 자주 듣는 게 계기였다. 기쿠치 마유미(61) 당시 사협 사무국장의 주도로 복지사들이 집을 일일이 방문해 그들의 존재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지역 복지를 담당하는 사협이기에 지역 젊은이들도 지원해야 한다는 단순한 생각에서였다.

히키코모리들은 외부와의 만남 자체를 꺼렸다.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한명 한명 리스트를 만들었다. 모두 113명. 고령자와 어린이를 빼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마을 인구 10명당 1명꼴이었다. 기쿠치 회장은 “히키코모리 하면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 같은 이미지가 있었는데, 우리 마을에 그렇게 많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만나 얘기를 들으려 해도 만나주질 않았죠”라고 말했다. 탁구 대회나 가라오케 노래 대회 등을 열면 나오지 않을까 했는데 나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앞이 꽉 막혔을 때 뜻밖의 일이 생겼다. 사협 직원 채용 시험에 20대 히키코모리가 지원한 것이다. 고교를 중퇴하고 집에 틀어박혔던 청년이었다. ‘일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도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얘기였어요. 아, 이 사람들한테 필요한 것은 ‘일’이구나, 그때 깨달았죠.” 기쿠치 등 복지사들은 히키코모리들을 만나 상담을 통해 그들을 세상으로 끄집어내려던 생각을 바꿨다.

일본 내각부가 2010년 조사해 추정한 히키코모리(15~39살)는 69만6000명이다. 히키코모리는 1990년대 중반부터 일본에서 사회문제화됐다. 내각부가 설문조사한 결과(복수응답) 은둔형 외톨이가 된 계기는 ‘직장에 적응 못해서’(23.7%), ‘병 때문에’(23.7%), ‘취직이 되지 않아서’(20.3%) 등의 답변이 많았다.

아키타현 인근 아오모리현의 히로사키대학을 졸업한 고다마 사카에(46)는 1992년 도쿄의 컴퓨터 회사에 프로그래머로 취직했다. 4년 반 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일자리를 찾았다. “저한테 맞는 일자리가 없었죠. 그때는 전산화도 안 돼 한 군데 지원하면 얼마 동안은 다른 곳에 지원도 할 수 없었어요. 1년 반 동안 14군데 정도 지원서를 냈는데 다 떨어졌죠.” 그는 외할머니 집으로 옮겨 방에 틀어박혔다. “점점 외출하기가 싫어졌고 집에만 있게 됐습니다. 일어나는 시각이 늦어져 낮밤이 바뀌는 생활을 하게 됐죠.” 그는 컴퓨터 게임에 몰두했다.

그가 집 밖으로 나온 것은 복지사가 전단지를 갖고 찾아와 홈 헬퍼(방문 돌봄 도우미) 연수를 해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고서다. 히키코모리들에게 일할 기회와 관련 정보를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협이 한집 한집 방문했던 것이다. 히키코모리가 하나둘 세상으로 나왔다. 10년 넘게 집에 틀어박혔던 고다마도 나와 6개월짜리 연수를 받았다. “처음에는 주저했어요. 그러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언제나 가능할까, 한번 해보자’ 하는 생각을 갖게 됐죠.”

사협은 2010년 4월 정사무소의 도움을 받아 히키코모리 지원 공간을 확보했다. 이곳이 ‘코밋토’다. 코밋토는 영어 ‘커미트먼트’(commitment)와 아키타 방언으로 소규모의 사람들이 사이좋게 어울리는 모습을 묘사하는 의태어에서 따왔다고 한다.

사협은 식당을 만들어 이곳에 코밋토 등록생들이 일할 수 있도록 했다. 기쿠치 회장은 “10년 넘게 집에만 있어서 사회를 경험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식당 일은 직업훈련 기간이라고 보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일을 더 해 임금을 받고 싶은 사람은 ‘시라카미 잎새버섯 키슈’를 만들어 판매한다. 잎새버섯은 이 지역 유명 토산품이다. 2011년 3월부터 키슈(프랑스식 파이)를 만들어 팔았는데 첫해 450만엔어치, 지난해 600만엔어치를 팔았다고 한다.

다음 단계는 ‘코밋토 뱅크’다. 구인 의뢰가 오면 밖에 나가 일을 하는 인력은행이다. 건설 일용직이나 밭일, 눈 치우기 등을 한다. 3~4개월짜리 일감도 가끔 들어온다. 그러면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한다. 사협이 집집마다 방문했을 때 취업정보를 받겠다고 한 이들 가운데 지금 회사 등에 취직한 사람이 36명에 이른다.

“전에는 ‘친구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죠. 코밋토에 나오면서 얘기를 나누는 친구들이 생겼고, 이젠 이런 관계를 잃고 싶지 않습니다. 당분간은 소바 면을 만드는 일을 하다가 기회가 되면 다른 일을 해보고 싶어요.” 후쿠다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다.

아키타/글·사진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 관련기사 : [인터뷰] 후지사토 정장, “사회복지협의회의 새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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