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행복한 세상] 창간 28돌 기획
착한 성장 행복한 사람들 ① 협동조합 천국 캐나다 퀘벡주
착한 성장 행복한 사람들 ① 협동조합 천국 캐나다 퀘벡주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은 경제성장의 과실이 특정 계층에 집중되는 ‘배타적 성장’(exclusive growth)에 반대되는 의미로 통용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는 포용적 성장이란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통화적인 측면과 비통화적인 측면에서 부의 증가에 따른 과실을 분배받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포용적 성장의 핵심 요소로는 일자리 창출, 기회의 평등, 신뢰의 구축 등 세 가지가 많이 거론된다. 포용적 성장은 최근 한국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많이 논의되고 있지만, 명확한 개념 정의가 확립된 건 아니다. <한겨레>는 앞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더불어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지구촌의 현장을 찾아 포용적 성장의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해 본다.
금융협동조합, 데자르댕
캐나다 퀘벡주 최대 도시 몬트리올에서 유독 눈에 띄는 건물 두 개를 고른다면, 하나는 높은 언덕에 자리잡은 구시가지의 노트르담 성당이고, 다른 하나는 다운타운에 있는 거대한 복합빌딩(3개 빌딩, 총 99층)인 데자르댕 콤플렉스다. 금융협동조합인 데자르댕의 사무실과 쇼핑센터로 구성된 이 건물은 몬트리올 다운타운의 랜드마크다. 밤이 되면 거대한 녹색 불빛을 내뿜는 외관으로 더 눈에 띈다.
1900년 출발뒤 조합원 700만명,
4만7천명 고용한 협동조합으로
다른 조합·사회적 기업의 ‘자금줄’
서커스업체 ‘태양의 서커스’도 지원
데자르댕 지점은 퀘벡주 곳곳에 퍼져 있다. 퀘벡주에는 데자르댕 외 다른 금융기관이 아예 없는 마을도 꽤 많다. 퀘벡주와 바로 옆 온타리오주에 있는 산하 신용조합만 335곳, 서비스망 795곳, 고용 인원은 4만7654명, 조합원은 무려 700만명으로, 퀘벡주 인구(800만명)와 맞먹는다. 퀘벡의 민간부문 1위 고용주가 데자르댕 금융그룹이다. 지난해 기준 자산 2481억 캐나다달러(225조8000억원)로, 퀘벡의 민간부문 1위 기업이다. 규모면에서뿐 아니라, 데자르댕은 다른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의 산파 구실을 하는 등 퀘벡주 경제의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 데자르댕 안에서 사회적 경제에 가장 특화된 조직은 데자르댕 연대경제금고다. 이 금고는 협동조합이나 비영리조직(NPO)을 대상으로 대출이나 자금지원을 해준다. 금고는 자신들이 투자 대상을 고를 때 영리에 앞서 기본적으로 “사회윤리적 선택을 한다”고 못박고 있다. 기업은 이익을 지역사회에 나누고, 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재투자하며, 나아가 사회적 경제의 발전을 이루는 것, 그리고 그 결과 사회가 통합되는 것이 연대금고의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지난 3일(현지시각) 몬트리올의 사무실에서 만난 데자르댕 연대경제금고의 전략책임가 베르나르 은두르는 “우리는 대출을 결정할 때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과 함께 사회적 가치를 본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에 다니던 은두르는 이런 데자르댕 연대경제금고의 이념에 공감해 직장을 옮겼다고 했다. 은두르는 “특정 프로젝트가 사회적 가치와 성공 가능성 모두 합격점을 받으면 담보가 없어도 대출을 해준다”고 말했다. 대출 규모는 수백만 캐나다달러에서 5만 캐나다달러까지 다양한데, 최근 대출을 해준 대표적 기업은 ‘일곱 손가락이 달린 손’이라는 이름의 서커스업체로 700만 캐나다달러(약 63억원)를 빌려줬다고 했다.
데자르댕 연대경제금고는 1971년 가난한 노동자들 집에 난방시설을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노동자 급여에 비해 난방장치 설치 비용이 상당히 비쌌는데, 데자르댕이 노동자들의 돈을 모아 싼값에 난방장치를 공동구매하는 일을 벌였다. 이후 이런 사회적 경제 지원을 상시적으로 할 조직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연대경제금고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데자르댕이 지원한 곳 가운데 가장 유명한 회사는 세계적 서커스업체인 ‘태양의 서커스’다. 태양의 서커스는 전통적인 서커스에 라이브 음악, 무용, 곡예 등 복합적 공연 요소를 결합시켜 세계적인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우뚝 섰다. 기 랄리베르테가 1982년 퀘벡의 거리 공연자 20여명을 모아 만든 지역 서커스극단에 불과했던 ‘태양의 서커스’는 이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순회공연을 할 만큼 유명해졌다. 이 ‘태양의 서커스’가 발돋움하게 된 계기가 1984년 데자르댕 연대경제금고에 첫 대출을 신청하면서부터다.
데자르댕이 협동조합 등에 대한 지원을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은 설립 때부터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퀘벡주 주도인 퀘벡시 안에 레비라는 작은 시골마을이 있다. 이곳에 데자르댕을 처음 만든 알퐁스 데자르댕의 생가가 기념관으로 남아 있다. 그는 은행 거래를 하기 힘들었던 농촌 주민들이 연 3000%에 이르는 살인적인 금리로 개인 고리대금업자들에게 돈을 빌리는 현실에 분노했다. 그래서 그는 유럽 신용조합 운동가들의 구상을 공부하면서 금융협동조합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기념관 안내자는 “알퐁스 데자르댕은 영국 출신 헨리 울프가 쓴 책 <민중 금고>라는 책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데자르댕은 1900년 맨 처음 레비에 있는 자기 집에서 데자르댕 금융협동조합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데자르댕 금융그룹이 거대기업화하면서 ‘민중 금고’로 출발했던 애초 취지에서 점점 멀어져 수익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최근 최고경영자에 오른 기 코르미에는 데자르댕이 ‘사회적 경제 지도자’라는 본래 목적에 다시 집중할 것이라고 했다.
몬트리올·퀘벡/글·사진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착한 성장 행복한 사람들] ①캐나다 퀘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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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만7천명 고용한 협동조합으로
다른 조합·사회적 기업의 ‘자금줄’
서커스업체 ‘태양의 서커스’도 지원
캐나다 퀘벡주 최대 도시 몬트리올에 있는 데자르댕 콤플렉스가 밤이 되자 녹색 불빛을 내뿜고 있다. 데자르댕은 북미 최대 규모의 신용협동조합이다.
퀘벡주 몬트리올시에 있는 데자르댕 연대경제금고의 모습. 데자르댕 금융그룹 내에서도 사회적 경제 지원에 특화되어 있는 조직이다. 조기원 기자
퀘벡주 몬트리올시 연대경제금고 안에 있는 조각상. 민주주의를 상징한다. 조기원 기자
데자르댕 연대경제금고의 전략책임가 베르나르 은드루. 조기원 기자
캐나다 퀘벡주 퀘벡시 레비에 있는 데자르댕 기념관. 알퐁소 데자르댕의 생가였다. 조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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