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체감온도가 영하 24도를 보이며 5년 만에 한파경보가 내려지는 등 전국에 걸쳐 한파가 몰아친 24일 오전 경기 고양시 김포대교 아래 한강이 유빙으로 가득 차 있다. 김포/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세계 곳곳 ‘최강 한파’
헤드라이트에 비친 눈이 마치 눈을 때리는 것 같았다. 23일 저녁 8시 렌터카를 몰고 서귀포시 안덕면 산방산 인근 숙소를 나섰다. 24일 오전 김포행 비행기를 예약했지만, 일찌감치 공항 근처로 가기 위해서다. 시야는 1m도 되지 않았다. 인적 끊긴 길은 ‘유령도시’ 같았다. 강풍에 날린 눈발이 나무와 건물을 하얗게 도배했다. ‘사고가 나도 아무도 오지 못하겠구나.’ 갓길에 아무렇게나 세워진 승용차들이 보였다. 한 시간이면 충분한 제주공항까지 70㎞ 길을 두 시간 넘게 기어갔다.
제주 12㎝…32년만의 폭설·강풍
7만여명 발 묶여…공항 노숙도
광주·나주 20㎝ 넘게 눈 쌓여 제주시 연동 인근 숙소 20여군데를 수소문했지만 방이 없었다. 찜질방에서 눈을 붙였다. 24일 아침 공항 가는 길엔 교통사고로 범퍼가 찌그러진 승용차, 헤드라이트 파편 등이 심심찮게 보였다. 제주공항 대합실은 아수라장이었다. ㅇ항공사 발권 데스크 앞에는 여행객들이 100m 이상 줄을 섰다. 바닥에 골판지를 깔고 누워서 대기하는 승객들도 많았다. 아침 6시50분부터 줄을 섰다는 ㄱ(51)씨는 “내일 다시 줄을 서라고 하니 자리를 뜨지 못하겠다. 밥도 못 먹었다”고 말했다. 25일 오전 9시까지 활주로 운영이 중단된다는 소식에 탄식이 터져 나왔고, 기자 역시 밤새 ‘공항 노숙’을 해야 했다. 눈이 오자마자 바닥에서 녹기 십상인 제주가 23일부터 시작된 기록적인 폭설과 강풍으로 ‘고립의 섬’이 됐다. 23일 오후 5시50분부터 항공기 전면 결항 사태가 벌어져 7만여명의 발이 묶였다. 24일에만 항공편 518편(출발 231편) 운항이 모두 취소됐다. 국토교통부는 항공기 운행 통제 시간을 25일 오전 9시까지로 연장했다. 국내 공항 활주로가 사흘 동안 폐쇄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기상청은 23일 제주에 12㎝의 눈이 내린 것은 1984년 1월(13.9㎝) 이후 32년 만에 가장 많은 적설량이라고 밝혔다. 24일 낮 12시 제주 적설량은 11.4㎝를 기록했고, 한라산 윗세오름에는 135㎝가 쌓였다. 순간 최대 풍속도 초당 23.2m나 되었다. 충청 이남 서해안과 호남 지역에도 폭설이 쏟아져 청주·광주·무안공항 등의 항공기 운항이 모두 중단됐다. 광주에는 저녁 7시 현재 21.6㎝의 눈이 내려 2005년 2월(23.4㎝) 이후 11년 만의 ‘눈폭탄’을 기록했다. 전남 나주에는 25㎝의 눈이 쌓였고, 장성과 영광 등지의 비닐하우스 열두 동이 무너졌다. 제주·전북 지역 일부 초등학교는 25일 개학을 연기했다. 전국적으로 혹한이 몰아쳤다. 이날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떨어지는 등 15년 만의 혹한이다. 기상청은 “전국에 한파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대부분 지역에서 올겨울 가장 낮은 기온이 나타났다. 서울은 2001년 1월15일 영하 18.6도 이후 가장 추운 날로 기록됐다”고 밝혔다. 강원 속초(영하 16.4도), 제주 고산(영하 6.1도)과 서귀포(영하 6.4도) 등은 일 최저기온 극값 1위가 경신됐다. 기상청은 “중국 북부지방에서 확장하는 찬 대륙고기압의 영향으로 25일까지 충남과 호남에 5~15㎝, 충남·호남 내륙과 제주(산간 제외)에 2~7㎝, 충북·경남 서부 내륙에 1~3㎝의 눈이 더 내리겠다”고 예보했다. 또 “이번 추위는 25일 오후부터 다소 풀리기 시작해 26일 서울의 경우 아침에는 영하 6도이지만 오후에 영상 1도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주/김성광, 정대하 이근영 유선희 기자 daeha@hani.co.kr
미국·중국·일본도 ‘꽁꽁’ 미 동부 11개주 비상사태 선포
중국 충칭, 20년만에 눈 내리기도 미국, 중국, 일본 등에도 이번 겨울 들어 최악의 한파와 폭설이 몰아쳤다. 미국 동부 지역에 22일(현지시각)부터 눈폭풍이 덮쳐 지금까지 11개주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특히 워싱턴과 뉴욕이 눈폭풍 영향권 아래에 놓이면서 미국은 주말 내내 ‘일시 마비’ 상태에 들어갔다. 여러 지역에서 적설량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노스캐롤라이나주와 테네시주, 켄터키주를 할퀴고 지나온 눈폭풍 ‘조나스’는 22일 오후부터 워싱턴 일대에 굵은 눈발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단전과 단수에 대비해 빵과 물 등을 사재기하면서 슈퍼마켓에선 이미 텅 빈 매대만 맨얼굴을 드러냈다. 22일 밤부터는 강풍이 몰아치기 시작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시야를 가렸다. 기자도 눈삽을 사기 위해 집에서 200m쯤 떨어진 월마트를 걸어가는 ‘모험’을 시도하다 중간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스노마겟돈’(Snowmageddon·눈과 최후 종말을 뜻하는 ‘아마겟돈’을 합친 말)에 비교할 만한 눈폭풍이라는 미국 언론의 보도가 실감이 났다. 눈폭풍을 몰고 온 구름은 이어 뉴욕시와 뉴욕주 일대로 중심대를 이동했다. 이에 따라 23일 오후부터 뉴욕시와 뉴욕주 남부 전체에서 차량 운행이 전면 금지됐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비상상황”이라며 “이 시각 이후 도로를 운전하고 다니면 필요에 따라 체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뉴저지주 남단 동부 해안 케이프메이 지역에서는 홍수까지 덮쳤다. 수도 워싱턴과 뉴욕, 뉴저지, 켄터키 등 11개 주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번 눈폭풍의 영향을 받은 시민이 미국 인구의 4분의 1인 8500만명에 이른다. 사망자도 최소한 18명으로 집계됐다. 전날부터 6680편 이상의 항공기가 결항했으며, 노스캐롤라이나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선 14만가구의 전기가 나갔다. 이번 눈폭풍은 역대 최고 적설량의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워싱턴 근교 볼티모어 국제공항에는 23일 오후 74.17㎝의 눈이 쌓여 공식적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버지니아의 랭글리 공군기지에는 190.5㎝의 적설량이 보고됐다. 중국 대륙도 난대 지역인 양쯔강 이남의 상하이에 한파가 몰아치는 등 혹한으로 꽁꽁 얼어붙었다. 중국 중앙기상대는 전날에 이어 24일 오전 6시를 기해 중국 전역에 오렌지색 한파주의보를 재차 발령했다. 오렌지색은 4단계 한파경보 중 두번째로 심각한 단계다. 네이멍구 건허시 진허진이 전날 영하 48도까지 내려가면서 올해 최저치를 기록했다. 상하이가 영하 7도로 35년 만의 한파를 기록했고, 충칭은 20년 만에 눈이 내리면서 항공편 100편 이상이 결항했다. 아열대 지역인 홍콩 신계의 판링에서도 눈발이 날렸다. 일본에도 폭설을 동반한 한파가 몰려왔다. 니가타현을 비롯해 동해에 인접한 지역에 24일까지 폭설이 내렸고 상대적으로 겨울이 따뜻한 규슈와 시코쿠에도 눈이 쌓이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남쪽인 규슈에 눈이 쌓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연합뉴스 yyi@hani.co.kr
7만여명 발 묶여…공항 노숙도
광주·나주 20㎝ 넘게 눈 쌓여 제주시 연동 인근 숙소 20여군데를 수소문했지만 방이 없었다. 찜질방에서 눈을 붙였다. 24일 아침 공항 가는 길엔 교통사고로 범퍼가 찌그러진 승용차, 헤드라이트 파편 등이 심심찮게 보였다. 제주공항 대합실은 아수라장이었다. ㅇ항공사 발권 데스크 앞에는 여행객들이 100m 이상 줄을 섰다. 바닥에 골판지를 깔고 누워서 대기하는 승객들도 많았다. 아침 6시50분부터 줄을 섰다는 ㄱ(51)씨는 “내일 다시 줄을 서라고 하니 자리를 뜨지 못하겠다. 밥도 못 먹었다”고 말했다. 25일 오전 9시까지 활주로 운영이 중단된다는 소식에 탄식이 터져 나왔고, 기자 역시 밤새 ‘공항 노숙’을 해야 했다. 눈이 오자마자 바닥에서 녹기 십상인 제주가 23일부터 시작된 기록적인 폭설과 강풍으로 ‘고립의 섬’이 됐다. 23일 오후 5시50분부터 항공기 전면 결항 사태가 벌어져 7만여명의 발이 묶였다. 24일에만 항공편 518편(출발 231편) 운항이 모두 취소됐다. 국토교통부는 항공기 운행 통제 시간을 25일 오전 9시까지로 연장했다. 국내 공항 활주로가 사흘 동안 폐쇄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다. 기상청은 23일 제주에 12㎝의 눈이 내린 것은 1984년 1월(13.9㎝) 이후 32년 만에 가장 많은 적설량이라고 밝혔다. 24일 낮 12시 제주 적설량은 11.4㎝를 기록했고, 한라산 윗세오름에는 135㎝가 쌓였다. 순간 최대 풍속도 초당 23.2m나 되었다. 충청 이남 서해안과 호남 지역에도 폭설이 쏟아져 청주·광주·무안공항 등의 항공기 운항이 모두 중단됐다. 광주에는 저녁 7시 현재 21.6㎝의 눈이 내려 2005년 2월(23.4㎝) 이후 11년 만의 ‘눈폭탄’을 기록했다. 전남 나주에는 25㎝의 눈이 쌓였고, 장성과 영광 등지의 비닐하우스 열두 동이 무너졌다. 제주·전북 지역 일부 초등학교는 25일 개학을 연기했다. 전국적으로 혹한이 몰아쳤다. 이날 서울의 아침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떨어지는 등 15년 만의 혹한이다. 기상청은 “전국에 한파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대부분 지역에서 올겨울 가장 낮은 기온이 나타났다. 서울은 2001년 1월15일 영하 18.6도 이후 가장 추운 날로 기록됐다”고 밝혔다. 강원 속초(영하 16.4도), 제주 고산(영하 6.1도)과 서귀포(영하 6.4도) 등은 일 최저기온 극값 1위가 경신됐다. 기상청은 “중국 북부지방에서 확장하는 찬 대륙고기압의 영향으로 25일까지 충남과 호남에 5~15㎝, 충남·호남 내륙과 제주(산간 제외)에 2~7㎝, 충북·경남 서부 내륙에 1~3㎝의 눈이 더 내리겠다”고 예보했다. 또 “이번 추위는 25일 오후부터 다소 풀리기 시작해 26일 서울의 경우 아침에는 영하 6도이지만 오후에 영상 1도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제주/김성광, 정대하 이근영 유선희 기자 daeha@hani.co.kr
미국·중국·일본도 ‘꽁꽁’ 미 동부 11개주 비상사태 선포
중국 충칭, 20년만에 눈 내리기도 미국, 중국, 일본 등에도 이번 겨울 들어 최악의 한파와 폭설이 몰아쳤다. 미국 동부 지역에 22일(현지시각)부터 눈폭풍이 덮쳐 지금까지 11개주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특히 워싱턴과 뉴욕이 눈폭풍 영향권 아래에 놓이면서 미국은 주말 내내 ‘일시 마비’ 상태에 들어갔다. 여러 지역에서 적설량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노스캐롤라이나주와 테네시주, 켄터키주를 할퀴고 지나온 눈폭풍 ‘조나스’는 22일 오후부터 워싱턴 일대에 굵은 눈발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단전과 단수에 대비해 빵과 물 등을 사재기하면서 슈퍼마켓에선 이미 텅 빈 매대만 맨얼굴을 드러냈다. 22일 밤부터는 강풍이 몰아치기 시작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시야를 가렸다. 기자도 눈삽을 사기 위해 집에서 200m쯤 떨어진 월마트를 걸어가는 ‘모험’을 시도하다 중간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스노마겟돈’(Snowmageddon·눈과 최후 종말을 뜻하는 ‘아마겟돈’을 합친 말)에 비교할 만한 눈폭풍이라는 미국 언론의 보도가 실감이 났다. 눈폭풍을 몰고 온 구름은 이어 뉴욕시와 뉴욕주 일대로 중심대를 이동했다. 이에 따라 23일 오후부터 뉴욕시와 뉴욕주 남부 전체에서 차량 운행이 전면 금지됐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비상상황”이라며 “이 시각 이후 도로를 운전하고 다니면 필요에 따라 체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뉴저지주 남단 동부 해안 케이프메이 지역에서는 홍수까지 덮쳤다. 수도 워싱턴과 뉴욕, 뉴저지, 켄터키 등 11개 주 정부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번 눈폭풍의 영향을 받은 시민이 미국 인구의 4분의 1인 8500만명에 이른다. 사망자도 최소한 18명으로 집계됐다. 전날부터 6680편 이상의 항공기가 결항했으며, 노스캐롤라이나주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선 14만가구의 전기가 나갔다. 이번 눈폭풍은 역대 최고 적설량의 신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워싱턴 근교 볼티모어 국제공항에는 23일 오후 74.17㎝의 눈이 쌓여 공식적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버지니아의 랭글리 공군기지에는 190.5㎝의 적설량이 보고됐다. 중국 대륙도 난대 지역인 양쯔강 이남의 상하이에 한파가 몰아치는 등 혹한으로 꽁꽁 얼어붙었다. 중국 중앙기상대는 전날에 이어 24일 오전 6시를 기해 중국 전역에 오렌지색 한파주의보를 재차 발령했다. 오렌지색은 4단계 한파경보 중 두번째로 심각한 단계다. 네이멍구 건허시 진허진이 전날 영하 48도까지 내려가면서 올해 최저치를 기록했다. 상하이가 영하 7도로 35년 만의 한파를 기록했고, 충칭은 20년 만에 눈이 내리면서 항공편 100편 이상이 결항했다. 아열대 지역인 홍콩 신계의 판링에서도 눈발이 날렸다. 일본에도 폭설을 동반한 한파가 몰려왔다. 니가타현을 비롯해 동해에 인접한 지역에 24일까지 폭설이 내렸고 상대적으로 겨울이 따뜻한 규슈와 시코쿠에도 눈이 쌓이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남쪽인 규슈에 눈이 쌓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연합뉴스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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