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맨 앞 가운데)이 21일 세계 60여개 도시 시장을 바티칸으로 초청한 기후변화 콘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바티칸/AP 연합뉴스
“인간으로 말미암은 ‘기후 변화’는 과학적 사실이며, 그것을 실질적으로 억제하는 것은 긴급한 도덕적 책무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후변화 억제에 대한 실천적 대응을 촉구한 ‘기후 선언’의 첫 문장이다. 한사람씩 차례로 ‘선언’에 서명하는 이들의 표정엔 엄숙함마저 감돌았다. 세계 60여개 도시 시장들이 21일 바티칸에 모였다. 프란시츠코 교황이 ‘현대판 노예제도와 기후변화: 도시들의 책무’라는 주제로 마련한 컨퍼런스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뉴욕(미국), 벤쿠버(캐나다), 스톡홀름·오슬로·마드리드·베를린(유럽), 보고타(콜롬비아), 코치(인도) 등 각국에서 온 시장들은 한마음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 대응을 다짐했다.
21~22일 이틀간 열린 이번 컨퍼런스는 오는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를 앞두고 세계 지도자들에게 환경 보호와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직접적인 노력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바티칸 라디오> 방송이 21일 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유엔은 특히 기후변화 탓에 생겨난 인신매매에 매우 단호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며 “파리 정상회담에서 지구 온난화를 막을 근본적인 협약을 도출해내는 데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바티칸이 이번 컨퍼런스에 국가 정상들이 아닌 도시 시장들을 초청한 데에는 현실적이고 과학적인 근거가 있다. 환경 전문가들은 도시 지역이 인류의 온실가스 방출량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만큼 대도시들이 지구 온난화를 줄이는 핵심이 돼야 한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컨퍼런스는 기후변화가 인도주의적 위기와 직결돼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환기하는 자리가 됐다. 환경 파괴로 농지와 일자리를 잃은 농촌 지역민들이 도시로 몰려들면서 저임금 노동과 인신매매의 먹잇감이 되고 있어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도시가 무분별하게 팽창하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충분한 경제적 기회를 제공하지 못해 대도시 외곽에 판자촌과 빈민굴이 생겨난다”며, 그런 추세를 억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외과 의사 출신인 이냐치오 마리노 로마 시장은 “노예제는 현대 도시들에서 지금도 존재한다”며, 부유한 환자들을 위해 매년 수만건의 불법 장기매매가 이뤄지는 현실을 사례로 들었다.
교황은 시장들에게 “환경문제의 개혁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선 (실제 현장인) 하부 단위에서부터 시작돼야 하며 위(중앙정부)로부터 강요될 순 없다”고 강조했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 시장은 “교황은 현재의 문제를 끝내기 위해 우리(시장)들을 불렀다”며, 2030년까지 뉴욕의 탄소 배출량을 40% 줄이는 행정에 착수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서 지난 6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 역사상 처음으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다룬 ‘회칙’을 발표한 바 있다. 교황 회칙은 로마가톨릭 교회에서 구속력이 가장 강한 공식 사목교서다. 교황은 이번 컨퍼런스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회칙은 ‘환경 회칙’이 아니라 인류 생태계에 대한 마음가짐을 되돌아보는 ‘사회 회칙’이다”라고 말했다.
조일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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